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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가지들을 향하여
어떤 것 (A라 하자)이 다른 것들 (B라 하자) 보다 아무리 핵심을 더 간파하고 잘 드러낸다고 해서 다른 것들이 모두 무가치하고 불필요한 건 아니다. A는 잔가지가 아닌 줄기나 뿌리를 B보다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을 뿐, B는 A가 미처 다루지 못한 잔가지들을 더 다루고 있는 것이다. 즉 같은 나무를 알려주지만 둘은 설명하는 데에 있어 무게중심이 다를 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겐 B보다는 A를 소개해주는 게 상식적인 수순일 수 있다. 뼈대에 대한 설명 없이 자잘한 인테리어에 대한 이야기는 기본 없이 응용으로 바로 넘어가는 것과 같기 때문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반면, 줄기나 뿌리 위주의 지식을 어느 정도 익힌 사람에게는 다음 수순으로 잔가지들의 풍성함을 둘러볼 수 있도록 안내를 해주는 게 당연할 것이다. 나무는 줄기와 뿌리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A나 B의 목적은 전체 나무에 대한 지식을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다. A만 해서도, B만 해서도 원하는 목적에 이르기 어렵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양자택일이 아니다. 오히려 순서다. 즉, A냐 B냐가 아니라, A를 먼저 할 거냐 B를 먼저 할 거냐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A에만 천착한 많은 사람들은 B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경멸하면서 자신의 우월성을 입증하려고 애쓰거나 조용히 기뻐한다는 점이다. 이유는 아마도 자기네들이 나무를 더 잘 설명한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건,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목적은 줄기나 뿌리를 아는 게 아니라 나무를 잘 아는 것이다.
반대로 B에만 천착한 많은 사람들 역시 A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고지식하다거나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아마도 자기네들이 나무를 더 잘 설명한다고 여기거나 A가 주장하는 본질이라는 것에 대한 획일적인 정의와 그 폭력성에 반감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건, 역시나 목적은 어느 것이 더 본질적인 것이냐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나무를 온전히 알기 위함이다. 줄기와 뿌리만으로 이루어진 나무는 열매도 맺지 못하는 빈약하고 앙상한 존재로써 소통은 상실되고 자기 자신의 생명만을 유지할 뿐이다. 자기가 가장 튼튼한 뿌리와 줄기를 가진 나무라는 우월감에 도취된 채.
마찬가지다. 좌우, 음양 등의 이분법적인 세계관은 온전한 지식을 얻기 위한 목적에 위배된다. A를 먼저 맛본 사람은 B를 경험하도록 적극적으로 힘쓰고, B를 먼저 맛본 사람은 A를 경험하도록 적극적으로 힘써야 한다. 둘 중 하나를 먼저 택했다면 나머지 하나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재미있게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거기에 머물며 다른 하나를 선택한 부류를 적으로 대한다. 우열의 논리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는 A나 B 중 어느 것 하나를 택한 후 거기에 남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투자한 사람의 경우에서 더 심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우열의 논리에 빠지는 건 A나 B 중 어느 것 하나가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을 선택하고 그것만으로 나무를 온전하게 파악했다고 확신하는 자아 때문이다. 자신이 선택한 게 완전해야만 하므로 (객관적인 이유는 없다. 그저 자신이 택하고 투자했기 때문이리라)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 하나는 무가치하고 불필요한 것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자기중심적인 사상. 자기애. 핵심은 A나 B가 아니라 나 자신인 것이다.
응용이 기본 없인 불가능하다는 논리는 모순이 없다. 그러나 응용 없이 기본만으로 그 분야를 다 알 수는 없다. 응용은 다양하기 마련이다. 뿌리와 줄기 없이 잔가지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잔가지 없는 뿌리와 줄기는 나무의 온전함을 나타내지 못한다. 대부분의 꽃과 열매는 가지 끝에서 맺힌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진정한 소통은 다양성을 기반한 풍성함에서 가능하다. 본질만을 강조하며 다양성을 경멸하는 본질주의자들이 즐겨 입는 옷이 옹졸함과 편협함이다. 이들은 자주, 그것도 아주 자주, 자기 진영의 후대들에게 다양성은 악이라고 가르친다. 제발 그러지 말자. 온전한 나무를 알기 위해 다양성을 환대하고 본질의 가치를 더욱 풍성하게 깨닫는 단계로 나아가길 응원하고 격려해주자. 우물 안에 후대들을 가둔다고 해서 그 우물이 맑아지거나 순수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유입이 없거나 빠지는 물길이 없는 호수는 웅덩이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썩은 내를 풍기며 사라지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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