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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보이는 게 중요한 이유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여주는 창이 되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 겉모습과 속모습, 육과 영 등의 구분에서 우리는 조금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이분법적인 눈으로 하나만 중히 여기고 다른 하나를 경히 여기라고 주어진 구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비교/대조하면서 각 속성을 더 잘 파악해서 전체를 알기 위함입니다. 몸과 마음을 통해 나를 알게 되고, 겉모습과 속모습을 통해 타자를 알게 되며, 육과 영을 통해 인간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마음은 몸을 통하지 않고선 알 수가 없습니다. 속모습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속모습은 겉모습에 묻어난 것밖에는 없습니다. 영도 마찬가지입니다. 관념적일지도 모르는 이 개념을 그나마 손에 잡히게 해주는 게 바로 육인 것이지요. 우리는 보이는 것들의 균열을 통해 비로소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대비되는 두 속성을 하나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우리 인간은 둘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모순될 수도 있고, 어쩌면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의 모습은 그 자체가 그렇기 때문일 겁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어쩌면 바른 시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성에 치우쳐서도 감정에 치우쳐서도 인간을, 아니 한 사람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바심이 나고 조심해야 할 순간은 어떤 사람을 이해할 수 없거나 설명할 수 없을 때가 아닙니다. 오히려 완전히 이해가 됐다거나 설명할 수 있다고 확신할 때입니다. 한쪽에 천착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에게나 모든 게 분명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신이 꽤나 위험한 거라는 사실을 체감하는 요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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