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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한 우물 파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10. 20. 22:58

한 우물 파기

한 우물 파기의 치명적인 약점은 보험을 가입하는 이유와 같다. 요컨대 불확실성이다. 아무리 열심히, 집중해서, 한눈팔지 않고 한 우물만 판다고 해서 물을 항상 길어낸다는 보장이 안 될뿐더러, 그러느라 투자했던 오랜 시간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져 버릴 가능성을 끝내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릴 적부터 숭고한 장인 정신과 같은 맥락으로 배웠던 한 우물을 판다는 행위는 그저 낭만적인 표현에 불과했던 것일까?

결과가 아닌 과정에 주목하면 한 우물 파는 행위는 다르게 읽힌다. ‘한’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덩달아 달리 해석된다.

바보가 아닌 이상 안 될 게 뻔한 일을 계속할 사람은 없다. 게다가 오랜 시간 공들여야 하는 경우에는 아무도 그 일을 시작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이리저리 메뚜기처럼 왔다 갔다 하며 정작 파 보지도 않고 모든 곳을 들쑤셔 놓으면 될까. 아닐 것이다. 한 우물이든 두 우물이든 어느 정도는 시간을 들여 파 보는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말이다. 특히 몸이 하나인 이상 곡괭이와 삽을 들고 땅을 파내려 가는 행위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누구나 하나의 우물을 판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 우물 판다는 행위는 낭만적인 표현을 넘어 비로소 지극히 현실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한 우물 판다는 행위를 다른 우물 파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여러 우물을 파기로 작정했다 하더라도 한 우물 파기의 숭고한 장인 정신은 여전히 존속 가능하다. 즉, 한 우물 파기의 정신으로 여러 우물을 팔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단, 결과가 아닌 과정에 주목한다면 말이다.

한 우물 파기의 방점은 성실한 지속에서 찾아야 한다. 인내와 노력이 수반된 지난한 행위 말이다. 나는 이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내지 못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이렇게 되면, 한 우물 파기가 어려운 진짜 이유도 달리 해석된다. 결과의 불확실성이 야기하는 안전성 문제가 아니라, 안 될까 봐 지레짐작하여 한 우물도 진득하게 손을 대지 않는 나의 겁먹은 자세가 바로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보험을 여러 개 들어도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어쩌면 이게 바로 한 우물 파는 장인 정신이 여전히 이 시대에도 유효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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