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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웅의책과일상

김주련 저, ‘안녕, 안녕’을 읽고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10. 22. 23:45


미풍처럼 다가온 위로와 격려

김주련 저, ‘안녕, 안녕’을 읽고

“안녕”으로 시작해서 “같이 밥 먹어요, 우리”로 끝나는 책. ‘어서 와, 여기 네 자리가 있어’라고 말하는가 하면, ‘말없이 들어주는 말들’로 읽는 이를 가만히 안아주는 책. 아무 걱정 없다며 허세 부리지 않고 ‘걱정이 있지만, 지낼만해’라고 말하면서 읽는 이가 주눅 들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책. 이밖에도 제목만 읽어도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는 열다섯 꼭지의 짧은 이야기가 그림책만이 할 수 있는 여백의 힘을 빌려 가볍고도 묵직하게 독자의 마음에 가 닿는다. 특히 시와 에세이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한 글을 좀처럼 당해내지 못하는 나에게 이 책은 습기를 많이 먹어 무거워진 마음 빨래를 보송보송하게 말려주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미풍처럼 다가왔다. 한국 와서 처음으로 동네서점에서 구입한 책이라 그런 걸까. 출판사와 서점 주인장뿐 아니라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저자의 마음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고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열매 가운데에는 지식과 정보도 있지만 위로와 격려도 큰 몫을 차지한다. 지식과 정보는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전달된다. 하지만 위로와 격려는 다르다. 전문가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존재하지도 않으며, 일방적으로 전달될 수도 없다. 위로와 격려는 대화와 공감이라는 깊은 우물로부터 길어 올린 소중한 열매이며, 오직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자만이 주고받을 수 있는 귀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내가 받은 선물도 바로 ‘위로와 격려’였다. 가깝게는 이 책 저자로부터, 멀게는 이 책에 소개되는 여러 그림책 저자들로부터, 그리고 모든 거리와 시간을 감싸며 초월하시는 그분으로부터 나는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었다.

한국성서유니온 대표이자 이 책의 저자 김주련은 자칫 텍스트가 가질 수 있는 폭력성과 빡빡한 텍스트로 이루어진 책이 가지는 위압감을 잘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슴에 한 아름 안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그림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도구로 다른 저자들의 글을 활용하는데, 그 글은 텍스트만으로 이루어진 어른들의 책이 아니라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진 그림책이다. 글이 아닌 그림, 텍스트 사이의 여백이 아닌 그림 안에 깃든 풍성한 여백이 이 책 곳곳에 진하게 배어있다. 지식과 정보가 아닌 상상력과 경이감이 함께 어우러진 그림책만의 여백이 뜻밖의 위로와 격려를 전달한다. 여러 그림책의 메시지들이 모여 저자만의 묵상, 사유, 경험, 기도를 통과하며 비로소 숙성된 글 모음집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 책에 소개된 그림책 리스트가 나와있다. 세어 보니 마흔넷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마흔네 권의 그림책을 도서관에 가서 하나씩 다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바쁘고 피곤한 현대인의 일상 속에 미풍처럼 스며든 이 책이 모든 독자들 마음에 가 닿아 평안의 통로가 되면 좋겠다.

#선율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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