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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시간과 공간을 만남으로 채우는
마쓰시에 마사시 저,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을 읽고
혼자 사는 삶이 우아하다고 말하는 사람 중 십중팔구는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지 않을까. 아무리 많이 가져도 언제나 갖지 못한 것을 욕망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혼자일 때의 자유를 잘 알고 그것을 동경하는 마음을 여전히 가슴 한 편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과 함께 하는 행복한 삶 가운데서도 혼자 있는 시간을 반드시 찾아내고 또 사수하려고 애쓴다. 물론 혼자 사는 삶과 혼자 있는 시간은 엄연히 질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혼자 사는 삶은 내게 있어 더 이상 고려 대상이 아니기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 나는 이 시간이 좋고, 이 시간이 주는 유익을 사랑한다. 읽고 쓰는 일도 모두 이 시간에 이뤄진다. 그러나 이런 내 삶이 우아한지 어떤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 작품 제목처럼 말이다.
주인공 오카다 다다시는 사십 대 남성이다. 최근에 이혼했고 대학생 아들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산다. 요컨대 오카다는 돌싱이다. 이 작품은 갑자기 비어버린 시간, 턱 하니 주어진, 그래서 감당하기 벅찬 자유 앞에서 주인공이 어떤 삶을 개척해 나가는지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로 읽을 수 있겠다.
시간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다. 시간과 공간은 항상 함께 고려해야 한다. 각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이 둘로 나누었을 뿐, 어쩌면 둘은 원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기억 속에 있는 어떤 특정한 시간을 떠올려보라. 머릿속에 그려지는 게 시간인가, 공간인가. 공간일 것이다. 공간이지만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자신만의 특정한 시간에 구속된 공간일 것이다.
이 자명한 이치는 이 작품 속에서도 그대로 투영된다.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카다가 혼자 살 집을 구하게 되는 과정, 그 집을 리모델링하는 과정, 그리고 다시 그 집을 나가야 하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집 짓는 계획을 세우는 과정 순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주인공 오카다의 돌싱 1년차 삶을 이 작품은 공간의 변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 공간의 이동 가운데 ‘가나’라는 옛 애인과의 재회가 주어지고, 그녀와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하는 과정이 독자의 시선을 가로채지만, 그 과정 또한 공간 이동의 플롯을 충실히 따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오카다가 얻은 집에서 자전거로 십 분 거리에 우연찮게 가나가 살고 있었고, 작품의 마지막에서 오카다가 새로 지을 집 위치도 가나의 집 바로 옆에 위치한다. 새로운 시간의 흐름이 새로운 공간의 이동으로, 그리고 그 시공간은 누군가와의 만남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인생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가 볼 땐 우아하게 보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의 눈에는 그렇지 않게 보일 수 있는 삶. 그러나 아무려면 어떤가. 시간과 공간의 흐름 속에 만남을 채워넣는 우리네 삶은 본래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삶이지 않겠는가.
저자인 마쓰이에 마사시의 작품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고 단번에 매혹되었던 나는 그의 모든 작품이 읽고 싶어졌고 곧장 실행으로 옮겼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 내가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에서의 마쓰이에 마사시를 기대했던 건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그러나 보기 좋게 나는 같지만 다른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상대적인 분량이 짧아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에서 만난 마쓰이에 마사시는 조금 더 간결했고, 조금 더 절제되어 있었으며, 무엇보다 조금 더 유머스러웠다. 굳이 두 작품 사이의 공통점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여전히 식상한 주제, 혹은 뻔한 일상 이야기로 독자를 사로잡아 마지막 책장까지 끌고 가는 그의 힘이라고 나는 대답할 것이다. 전작 읽기 작가로 마쓰이에 마사시를 정한 건 아무래도 잘한 선택 같다. 꼭 배우고 싶은 글쓰기를 그로부터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비채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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