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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버스 그리고 홀로 서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22. 12. 23. 13:50

버스 그리고 홀로 서기

한국 와서 첫 휴가를 보내고 있다. 아내는 휴가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3주 겨울방학을 맞이한 아들을 홀로 방치하지 않고 함께 하기 위해 나는 내게 주어진 휴가 일수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여전히 일을 하는데다 날씨까지 눈비를 동반하여 연일 낮은 온도를 가리키고 있어 원거리나 야외활동에는 아무래도 제약이 있는 상황 속에서 보내는 휴가가 되어 버렸다. 덕분에 아들과 단 둘이 보내는 휴가가 되었고, 나는 마치 미국에서의 삶을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다시 살아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마저 느낀다.

오늘은 암벽 등반 체험 기회를 우연히 알게 되어 대전 중앙시장 근처로 왔다. 지금은 아들을 기다리며 1층 카페에 앉아 이렇게 글을 끄적거리고 있다. 일부러 여기로 올 땐 버스를 탔다. 일반버스를 한 번도 타 보지 못한 아들을 위한 배려이자 체험이자 훈련이 목적이었다. 버스 가격이며, 교통카드, 안내방송, 환승 시스템 등을 찬찬히 설명해주며, 미국에서완 달리 이제 혼자서도 이곳저곳을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오갈 수 있는 아들이 되길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내가 아들 나이였을 땐 집에 차가 없었다.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가정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자가용이란 물건은 부잣집에서나 몰고 다니는 고가 장비였다. 부모님이 학교 앞으로 차를 몰고와 친구를 태우거나 내려주는 광경을 보면서 나는 그 친구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신발이며 양말 할 것 없이 모두 젖어 버렸던 내 상황이 비교되며 부잣집 친구들이 얄밉도록 부러웠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순간은 언제나 환경의 열악함이 큰 몫을 담당하게 된다.

아들은 나보단 여유로운 환경에서 별 부족함 없이 자랐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특히 그 어디를 가던지 부모가 차로 데려다 주고 데리고 와야 하는 시스템이 기본으로 정착된 곳이라 미국 아이들은 한국 아이들에 비해 아무래도 대중교통 이용 면에 있어서 부모 의존적이다. 이에 비해 한국 아이들은 초등학생부터 혼자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독립성을 누린다. 두 살 반 때 미국으로 건너가 열세 살이 되어 한국으로 들어온 아들이 감당해야 할 차이일 것이다.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춘기가 시작된 아들, 갑자기 미국에서 한국으로 바뀐 커다란 환경의 변화를 겪어내고 있는 아들, 화이팅이다. 아빠랑 엄마가 잘 도와줄게. 멋지게 혼자 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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