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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새로운 시작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1. 24. 22:04

새로운 시작

한파주의보가 내리기 하루 전, 낮 최고 기온은 영상 6도를 가리켰다. 나는 반팔 티셔츠를 입고 미리 싸둔 짐을 들어 옮기기 시작했다. 우리의 차로는 감당하기 힘들어 장모님 차도 하루 빌려 놓은 터라 두세 번 오가면서 이사를 마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아들도 이젠 제법 힘을 쓸 줄 알아서 큰 도움이 되었다. 마침 무릎을 다쳐 고생하고 있는 아내의 역할 이상을 아들이 해주어 정말 다행이었다. 직장에서 제공하는 생활관에서의 7개월 간의 삶을 마무리짓는 날이 드디어 우리에게 온 것이었다.

책장 두 개가 갖추어진 곳, 비록 스무 평 남짓밖에 안 되는 조그만 아파트이지만 우리의 돈으로 처음 장만한 집이다. 너무 오래되고 낡아 리모델링하느라 반 년 넘게 걸렸고 중간중간에 여러 문제가 발생하여 그것들을 해결하느라 곤욕을 치를 때도 많았지만, 우리가 스스로 장만한 집이라는 건 집의 크기와 질을 떠나 우리에겐 큰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매달 월세가 나가지 않는다는 점은 무엇보다 우리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험할 복일 것이다.

한파주의보가 내려 현재 온도 영하 14도를 기록하고 있는 지금 나는 두 개의 책장 앞에 놓은 조그만 책상 앞에 앉아 스탠드 불빛에 의지하여 이렇게 처음으로 글을 남긴다. 느낌이 좋다. 앞으로 이 좁지만 안락한 공간에서 쓰일 글들이 나는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내일부턴 나도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할 작정이다. 미국에서 11년간 운전은 실컷 했기 때문에 대중교통이 잘 발달한 한국의 이점을 나는 십분 활용하고 싶었다. 이젠 아들 녀석도 버스를 타고 학교 등하교를 실수하지 않고 잘한다. 이렇게 우리 가족의 한국 정착은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나 많은 변화를 거치고 있는 아들이 대견스럽다.

미국 출장을 다녀온 직후에 진행했던 이사라 시작하기 전엔 내 체력이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 내심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의외로 힘든 이사로 하루종일 땀을 흘리며 노동을 해서 그런지 시차 적응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어젯밤은 그냥 쓰러져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제시간에 눈을 뜰 수 있었다. 그것도 아무런 몸살 기운 없이 상쾌한 기분으로 말이다. 땀 흘리는 노동의 중요성을 나는 다시 실감한다.

마침 구정 당일은 결혼 18주년 기념일이었다. 아들의 생일도 나흘 전이었다. 그리고 우리 셋은 이제 새 집에서 생활을 시작한다. 2023년, 새로운 시작이다. God will make a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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