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in monologue

영하에 잠긴 날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1. 27. 21:04

오늘은 하루종일 영하의 기온에 잠겨있다. 따스해 보이는 양지에 서 있어도 전혀 따뜻하지 않는 날. 칼바람은 재킷 빈틈을 뚫고 들어와 겨울임을 증명한다. 나는 귀가 에리는 기분이 싫어 허겁지겁 모자를 쓴다. 마스크 사이로 비집고 나온 입김이 성가시다. 안경이 뿌옇게 되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안경을 쓴 일을 나는 또 후회한다.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었다. 물총조개가 들어 있는 칼국수다. 파전도 하나 시켜 오피스를 같이 쓰는 동료와 함께 해치웠다. 계산을 하려고 하니 동료가 오늘은 기어코 자기가 사겠노라고 떼를 쓴다. 기분 좋게 점심을 얻어먹고 밖으로 나오니 춥지가 않았다. 역시 인간은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 마음과 생각이 달라지는가 보다. 철학적인 사유를 한바탕 풀어헤쳐놓고 나는 괜히 멋쩍어진다. 인간이 인간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야말로 겸손해지는 순간이 아닐까.

요즘 통 책을 손에 들지 못한다. 미국 출장에다가 이사에다가, 그리고 이젠 버스로 출퇴근까지 하게 되니 몸도 마음도 지친 듯하다. 도서관에서 빌린 세 권의 책을 일주일 연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빌미로 이틀 전부터 책을 부지런히 읽게 되었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그것을 긍정적인 동기 부여로 사용할 수 있다면 독이 아니라 약이 된다.

약 3주 전에 주문했던 발생생물학 교과서가 어제 도착했다. 주문 당시 아마존에서는 약 170달러였다. 그런데 알라딘에서는 약 17만 원이었다. 이상했다. 이게 웬일인가 싶었다. 미국 출장 가는 김에 사오려 했던 계획을 급수정하여 알라딘에서 해외배송으로 구매를 했었다. 어제 배달된 책을 살펴보며 다시 알라딘 홈페이지에서 같은 책을 검색해보니 거의 두 배 가격으로 적혀 있었다. 34만 원. 아마도 알라딘에서 미처 환율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가격을 책정해 놓은 것 같았다. 책이 2019년에 만들어졌으니 아마도 그때 가격이 그대로 이어진 듯했다. 아무도 구매하지 않았으니 가격도 그대로 놔두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거나 나만 이득을 본 셈이다. 왠지 돈을 번 것 같다. 책이 더 예뻐 보인다.

시차를 이번엔 전혀 겪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닌 것 같다. 잠은 그럭저럭 문제없이 자고 있는데 소화 불량에 걸린 듯하다. 더 적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몸이 늙어가는 속도에 맞춰 입에 넣는 것도 줄여야 하는데 나는 자꾸만 습관처럼 이삼십 대의 내가 되어 먹고 또 먹게 된다. 무엇인가를 먹어서 건강해지는 게 아니라 무엇인가를 먹지 않아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다. 절제가 답이다. 일상 속 작은 저항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in monolog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이지 않는 삶과 기꺼이 매이는 삶  (0) 2023.02.04
기억되는 건 내용이 아닌 행위  (0) 2023.02.01
관점을 달리하여 바라보기  (0) 2023.01.26
새로운 시작  (2) 2023.01.24
풍경  (0) 2023.01.17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