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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매이지 않는 삶과 기꺼이 매이는 삶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2. 4. 09:43

매이지 않는 삶과 기꺼이 매이는 삶

매이지 않는 삶을 꿈꾼다. 출근 전과 퇴근 직후에는 한 여자의 남편으로 한 아이의 아빠로, 일과 시간에는 창의성과 숙련된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는 생물학자로, 자기 전 한두 시간 동안은 무명작가이자 아마추어 문학도로 살아가는 삶. 그러나 남편으로도, 아빠만으로도, 생물학자로도, 작가나 문학도로도 규정되지 않는 삶. 아, 자유로이 여러 정체성 사이를 오가며 매이지 않고 치열하게 즐길 수 있다면.

그러나 모든 삶은 무게를 가진다. 무게는 힘을 생성한다. 그 힘은 모두를 끌어당긴다. 끌어당기면서도 다른 삶에 끌려간다. 각 정체성은 관성의 힘으로 전체인 나를 속박하려 한다. 나는 쉽게 속박된다. 거기엔 매번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그러는 사이에 일부의 나는 배제된다. 힘의 논리는 여기서도 유효하다. 결국 하나의 나만 남게 된다. 이건 끝까지 살아남은 나의 승리일까, 다양한 나의 죽음일까. 나는 기뻐해야 하는 걸까, 애도해야 하는 걸까.

나는 기꺼이 매이는 삶에서 답을 찾는다.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는 삶은 가히 초월적이고 이상적이다. 생계를 걱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범인은 가 닿을 수 없는 삶이다. 매일 수밖에 없는 삶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하나이든 둘이든 나는 다양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유지하면서 그 삶 속에 매이며 그 안에서 자유를 찾을 것이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만 느낄 수 있는 만족감과 자유, 한 아이의 아빠일 때만 느낄 수 있는 은혜와 사랑, 전문성을 탑재한 생물학자로 설 때만 누릴 수 있는 쾌감, 작가일 때만 느낄 수 있는 깊은 치유와 만족감, 그리고 독자로 책 속을 여행할 때만 누릴 수 있는 해방과 자유.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는 삶과 작은 것 하나에도 기꺼이 충만하게 매이는 삶. 나는 조용히 후자를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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