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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푸시킨

알렉산드르 푸시킨 저 ’눈보라‘를 읽고

미천한 상식으로, 학창 시절부터 내게 각인된 푸시킨이라는 이름은 그저 외국 시인일 뿐이었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를 비롯한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읽으며 그들의 입을 통해 자주 들려진 푸시킨은 그 이상이었다. 그들보다 한 세대 앞선 작가라는 위상을 넘어 러시아 문학을 있게 한 근원 같은 느낌이랄까. 러시아 국민은 물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숱한 러시아 작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푸시킨.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는 푸시킨으로부터 뻗어 나온 지류의 깊고 풍성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만큼 푸시킨은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같은 존재인 것이다.

언제 한번 읽어봐야지 하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녹색광선 책으로 드디어 푸시킨을 읽게 되었다. 녹색광선 책은 어떤 작가를 처음 접할 때 아주 탁월한 가이드가 된다. 길지 않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소개, 그리고 그 소개글을 시각적으로 풍성하게 해주는 여러 사진과 그림들은 작품을 읽기 전에 입맛을 다시며 메인요리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키는 훌륭한 전채요리 역할을 충실히 해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눈보라‘라는 제목의 작품을 표제로 하는 단편집이다. 다섯 편의 단편소설을 담은 이 책은 ’벨킨 이야기‘로 러시아에서 출간되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벨킨이라는 작가가 쓴 것처럼, 마치 푸시킨은 그 글을 받아 간행만 한 것처럼 되어 있지만, 벨킨은 가공의 인물이고 실제 저자는 푸시킨이라 한다. 푸시킨의 첫 소설집이라는 이유, 시대 정황이라는 이유, 등의 여러 가지 이유가 푸시킨에게 벨킨이라는 이름 뒤에 숨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다섯 편을 모두 읽은 지금 하나의 해석을 더하자면, 이 시도조차 푸시킨의 기발한 장난기어린 창의력과 상상력의 연장선에 있다는 생각이다. 푸시킨이 썼든 벨킨이 썼든 작품을 즐기기에는 별 상관없지만 말이다.

추석을 맞아 부모님을 뵈러 가는 기차 안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에 적당한 작품이었다. 손에 딱 잡히는 판형, 가볍고 튼튼한 양장본으로 한 작품이 기껏해야 20-30 페이지 안팎이라 전혀 부담이 없었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모두 누구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식이라, 구두로만 존재하던 어떤 이야기를 처음으로 글로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치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들려줄게, 너만 알고 있어,라는 말을 먼저 듣고 읽는 듯한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19세기 초에 완성된 작품 속에서 나는 21세기 현대소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장편에 비해 단편이 가지는 특유의 기발함과 재치가, 물론 현대소설에서처럼 세련되어 보이진 않았지만, 그대로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눈보라’에서 여주인공이 눈보라가 치는 가운데 기다리던 신랑 대신 나타난 인물이 나중에 결국 사랑에 빠져 청혼을 하게 되는 남자였다는 착상은, 비록 매끄럽진 않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였다는 생각이다. 시공간이 19세기 러시아였을뿐 푸시킨의 기발한 상상력은 시대를 이미 초월한 것 같았다.

어쩌다 보니 러시아 문학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시공간이 달라 어색한 기분이었지만, 결국 같은 인간들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오히려 더 빠져들게 된다. 다름 속에서 같음을 발견하는 과정, 개별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것을 발견하는 과정, 통찰력은 이렇게 길러지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러시아 문학에 목이 마르다.

#녹색광선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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