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읽기와 쓰기

잔상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12. 30. 17:26

잔상

장편소설을 읽고 나면 마음에 큰 잔상이 남는다. 책을 덮고 나서 며칠간 헤어 나오지 못할 때도 많다. 기발한 착상과 충격적인 이야기가 친절하지 않게 담긴 단편소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잔상의 밀도는 단편이 높다. 잔상의 수명은 장편이 길다. 잔상의 투과력이랄까 파괴력이랄까 하는, 독자의 내면을 흠뻑 적시는 힘은 장편의 고유한 매력이다. 분량은 시간을 흡수하고, 흡수된 시간은 독자의 마음과 생각을 오롯이 담아낸다. 다른 걸 할 수 있는 선택권을 포기하고 수십 시간 책과 함께 한 나날들이 응집된 결정체가 바로 ‘벽돌책 깨기’의 묘미인 것이다.

어제 남긴 ’언어의 무게‘ 감상문은 제목에 충실하려는 나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사실 이 책은 여러 층위에서 읽을 수 있다. 언어의 무게로도, 글을 쓰고 번역하고 출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도, 상실과 운명을 극복하는 한 남자의 성숙기로도, 그리고 존엄사에 관련된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 나의 감상문은 여러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을 언급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아쉽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그들이 살아있다. 서서히 잊히겠지만 적어도 며칠은 지속될 것이다. 우아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작품을 읽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또한 내가 공을 들이고 있는 소설의 진행에 대해 도움을 얻을 수 있어 유익했다. 특히 레이랜드가 번역이 아닌 자기만의 글로 쓰는 소설로부터 반짝이는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많은 문장들을 메모장에 담아놨다. 오늘도 훑어보다가 다시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 역시 언어의 힘, 언어의 무게일 것이다.

'읽기와 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읽는 시간  (0) 2024.01.09
글 쓰는 시간  (1) 2024.01.08
절박함: 쓰는 이유  (0) 2023.12.15
독서의 길  (0) 2023.12.08
  (0) 2023.12.06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