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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책 읽는 시간

가난한선비/과학자 2024. 1. 9. 11:47

책 읽는 시간

이틀 전부터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기 시작했다.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19세기 영국의 낯선 풍경 속으로 단숨에 빠져들었다. 황량한 지역 위에 우뚝 서 있는 집 워더링 하이츠에도 잠시 다녀온 기분이다. 어디나 그렇듯 그곳에도 이야기가 있었다. 당분간 나는 그곳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시공을 초월한 여행을 즐기다 오게 될 것이다. 


책 (문학작품, 특히 소설 위주) 읽는 시간이 주는 혜택은 여행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에 담긴 내용이 역사성을 띠는지 안 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신화나 전설일지라도 상관없다. 이 여행의 동력은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상상이 거세된 채 냉철한 이성만을 요구하는 책들도 유익이 있다. 지식의 확장과 깨달음은 무지와 무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길이 된다. 그러나 그런 책들만 고집하게 되면 곤란한 점이 생겨난다.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어지간해선 자기중심적인 태도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하나의 사상에 사로잡혀 고독하고 냉소적인 이방인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팔짱 끼고 앉아 혼자만 잘난 사람으로 세상의 판사가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이런 이들은 차라리 책을 읽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새로운 명제와 새로운 개념의 숙지는 타자와 세상의 이야기를 듣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도제식 수업만으로는 뇌는 커질지언정 귀는 퇴화하기 마련이다. 소설은 이런 면에서 탁월한 길잡이가 된다.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시공간 속으로 나를 내던져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곳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경청과 공감. 문학을 읽는 시간이 선사하는 가장 큰 선물이자 이 여행을 해야만 하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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