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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절박함: 쓰는 이유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12. 15. 18:02

절박함: 쓰는 이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 팔 할이 절박함이다. 절박함이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다. 어쩌면 내가 예민해서일지도 모른다.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소중함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랄까.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서며 전반전이 남긴 기억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사무치게 깨달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슬픔과 허무함을 느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후반전은 전반전의 연장전으로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전반전도 나름대로 열심히 달렸던 삶이었다. 자신감도 성취감도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내포한 단조로움에서 내가 느낀 건 경박하게 보일 만큼의 가벼움이었다. 내 인생을 그렇게 되도록 놔두고 싶진 않았다. 나는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방법을 알지 못했다.

풍성한 가지가 있어야 날아다니는 새도 쉬어 갈 수 있다는 게 내 지론이다. 한 우물 파서 장인이 되는 건 시대착오적인 접근법이 된 지 오래다. 그런 방법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극소수에게, 그것도 팔 할 이상이 운으로 주어진다. 그들은 이 할 이하의 자신의 역량이 모든 걸 다 했다고 떵떵거리겠지만 말이다. 인간은 어지간해선 변하지 않지만, 스스로 하는 합리화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고도 남는다. 나의 전반전은 생물학이라는 일직선 상에 있었다. 거기에 올인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 극소수에 포함되지 못했다. 

내게 있어 가벼움을 극복하여 내 인생에 무게를 더하며 더욱 풍성히 만드는 방법은 읽기와 쓰기였다. 일차적인 독서, 그러니까 흥미 위주로 읽어나가는 독서로는 불가능했다. 이차적인 독서, 즉 자기 발전을 위하고 지경을 넓히기 위한 독서를 해야 했다. 그리고 자기 안에 갇히지 않기 위해 삼차적인 독서, 다시 말해 타자와 세상을 향하는, 경청하고 공감하는 독서로 나아가야 했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깊게 쓸 수 있는 시작점에 놓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깊이 읽기에 이은 깊이 쓰기. 이것은 깊은 읽기 다음에 위치한다. 먹기만 하는 단계를 지나, 먹고 소화하는 단계, 그리고 소화한 것으로 성장하는 단계, 성장하여 자기만을 위하지 않고 타자와 세상으로 나아가 공적인 임무도 충실하게 담당하는 단계로 이루어지는 읽기의 여정의 말미에 위치한다. 먹은 걸 무조건 뱉어내는 단계를 넘어 가려서 뱉어내는 단계로 나아가는 쓰기의 여정이 곧 깊은 쓰기의 경로라 할 수 있겠다. 

연말이라 한 해를 돌아보며 후회와 반성을 하게 된다. 그 후회와 반성이 생각과 말로만 된다면 아무런 무게를 갖지 못한 채 공중으로 날아가버리고 말 것이다. 쓰자. 써 보자. 일단 쓰기 시작하면 그동안 놓쳐왔던 소중한 것들이 아까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당신도 절박해질지 모른다. 나의 동지가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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