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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독서의 길

가난한선비/과학자 2023. 12. 8. 20:28

독서의 길

가볍고 쉬운 글에서 반짝이는 재치와 뜻밖의 깊이를 맛보는 즐거움도 쏠쏠하지만 그런 글에 만족해버리고 마는 건 독자로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무겁고 어려운 글만 읽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런 글을 읽어내려고 애쓰지 않는 독자에겐 분명 한계가 온다고 믿는다. 매너리즘이랄까, 슬럼프랄까 하는, 독서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며, 심하면 읽어야 할 이유조차 발견하지 못하는 시기가 도둑처럼 찾아온다고 나는 믿는다. 늘 책을 가까이 두면서 나는 그런 상태로 빠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는 편이다. 그러기 위해선 독서에 균형이 필요하다. 누차 언급했던 독서의 3단계 중 1단계 (흥미 위주, 쉽고 가벼운 책들)와 2단계 (지식과 깨달음의 확장, 상대적으로 어렵고 무거운 책들)에 해당하는 책들을 골고루 읽어나간다면, 독서는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안 하고를 더 이상 논할 수 없는 '일상'이 될 것이다. 

나는 늘 길 위에 있는 사람을 존경하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길 위에 있다는 건 그냥 가만히 서 있는 게 아니다. 가만히 서 있으면 주저앉게 되고 눕게 된다. 퇴보한다는 말이다. 늘 길 위에 있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길 위에 있는 건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역동적인 개념이다. 늘 변함없다는 건 그 누구보다도 역동적인 상태에 있다는 역설이 여기서도 통하는 것이다. 

독서의 길 위에 있다는 건 계속 읽어나간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1단계의 독서만을 고집하게 되면 어느 순간 그만두게 된다. 인간은 다 이루었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가장 위험한 법이다. 늘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겸손해야 하는데, 독서의 영역에서 만큼은 스스로가 계속해서 스스로를 그런 상황에 노출시켜야 한다. 가벼운 에세이나 소설만 읽다가는 그 작가나 그 분야에 정통할 수는 있겠으나 독서라는 행위 자체에 머지않아 회의를 느끼게 될 것이다. 내가 이것밖에 이해하지 못하나, 싶은 책들을 종종 읽어줘야 한다. 한 시간을 집중해도 한 페이지, 아니 한 문장에서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책들을 손에 들고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노력은 아무도 요구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해야 한다. 독서모임이라든지 반강제적으로 그런 책을 읽어나가는 기회를 활용하면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함께 읽기는 깊고 풍성한 독서의 정석이다. 

이런 말을 누차 강조해도 고개만 끄덕이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연말이고 하니, 내년엔 꼭 이런 시도를 해보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게 어떨까.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고, 드디어 '중력'에서 벗어나 '은총'의 길로 접어드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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