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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잘 쓰기 위해 분별해서 읽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24. 3. 12. 22:22

잘 쓰기 위해 분별해서 읽기

읽기와 쓰기에 대해 그동안 쓴 글만 해도 수십 편이 되겠지만, 수백 편이라도 모자랄 주제이기에 오늘 하나 더 보탠다.

먼저 질문 한 가지.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하나요?”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두 가지 답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네,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합니다.” 
>>> 쓰는 행위는 출력에 해당된다. 출력은 입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궁극적인 입력은 읽기다. 또한, 쓰는 행위는 움직임이다. 움직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너지는 섭취한 음식을 소화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읽기가 곧 음식이다. 다시 말해, 쓰기라는 행위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읽는 행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진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다. 이젠 말 같은 말을 해볼 차례다. 읽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읽어야 한단 말인가? 아무거나 읽으면 잘 쓸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좀 더 자세한 답은 아래 두 번째 대답에서 이어가겠다. 

두 번째, “아니요, 잘 쓰려면 많이 읽지 말아야 합니다.”
>>> 첫 번째 답과 반대라서 의아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 나의 두 가지 대답의 핵심이 담긴다. 말하자면 읽기의 대상을 분별하자는 것. 그렇다면 질문은 다음과 같이 바뀌어야 한다. “잘 쓰려면 어떤 글을 많이 읽어야 하나요?” 이 질문이 자연스레 가리키는 반대쪽은 잘 쓰기 위해 읽지 말아야 할 글도 있다는 것이다. 분별이 필요한 이유다.

내가 감상문을 수백 편 써왔기에 감상문으로 예를 드는 게 제일 괜찮아 보인다. 좋은 감상문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글을 읽어야 할까. 당연히 감상문을 쓸 작품은 읽어야 하므로, 그것을 제외한 글을 생각해 보자. 이를테면,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 동시대 다른 작가의 작품?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작가의 작품? 그 작품이 쓰인 시대적 배경에 대한 역사적 지식을 담은 글? 그 작품이 다루는 주제를 좀 더 깊게 공부하게 위한 참고자료? (여기까지를 전자라고 하자) 혹은 다른 사람이 이 작품에 대해 먼저 쓴 감상문이나 서평이나 해설? (이를 후자라고 하자)

감상문을 예로 들어서 이렇게 김이 좀 빠진 듯한 느낌이 들지만, 좀 더 일반화시켜 말하자면, 전자와 후자의 거리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전자는 내가 쓰려고 하는 타입의 글과 거리가 상대적으로 먼 반면, 후자는 내가 쓰려고 하는 타입의 글과 아주 가깝다. 그런 글들을 몇 편 보면 쉽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된다. 마치 미리 답을 비밀스럽게 먼저 본 것 같은 기분까지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은밀한 희열만큼 궁극적으로 내 손에 의해 쓰일 글의 고유성은 상실된다. 전형적이라거나 안전하다거나 혹은 글 좀 쓴다는 칭찬까지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칭찬을 다른 말로 하면 뻔한 글이라거나 예상했던 글이라는 평가일 수 있다. 결국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은 영원히 쓰지 못하게 될 가능성을 한층 더 높이게 되는 꼴일 수 있다. 나는 성장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쉽게 얻은 성공이라 생각한다. 별 노력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중견급 작가와 비슷한 칭찬을 듣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그 가소로움 때문에 더 좋은 글은 절대 쓰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상을 다 받았으니 뭐 그걸로 된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나의 답은 간단하다. 전자는 많이 읽되, 후자는 읽지 말 것. 전자는 읽을수록 더 좋은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나, 후자는 읽을수록 더 좋은 글을 쓰려는 마음을 사라지게 만든다는 것. 정 후자에 해당하는 글을 보고 싶다면, 다른 작품에 대한 감상문, 서평, 해설을 한두 편 보길 바란다. 글의 형식이라든지 전개 등의 기본적인 유형을 익히는 데 도움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그 이상의 도움을 기대하는 건 스스로 좋은 글을 쓰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고, 그런 좋은 글을 쓸 자신이 스스로에게 없다고 시인하는 것과 같다. 쓰지 말아야 할 글인 것이다. 억지로 쥐어짜서 자기 글도 남의 글도 아닌, 한마디로 이도저도 아닌 글은 나는 글이 아니라고 본다. 진정성이 담기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글의 가장 기본은 유려함이 아니라 진정성이라고 나는 믿는다. 빠른 성공을 위해 샛길을 찾는 인간에게서 나는 언제나 사기꾼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 시대에 빈번하게 성공을 거머쥐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공하지 못해도 성실하게 묵묵히 계속 써나가는 진정성 어린 작가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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