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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성실한 글

가난한선비/과학자 2024. 2. 6. 11:11

성실한 글

글쓰기를 이제 막 배우며 시작하시는 여러 분들의 글 중 빈번하게 눈에 띄는 특징이 있어 소개해보려고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거들먹거리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단문 위주로 쓰려고 애쓰는 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사용한 단문이 그저 성의 없게 보인다거나, 내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다 아는 척하는 것처럼 보인다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치 자신이 지혜자인 듯 착각한 나머지 아포리즘을 구사하는 식으로 보인다면, 나는 차라리 단문을 사용하지 마시라고 권하고 싶다. 오히려 구구절절, 비록 장문이 된다 하더라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식으로 써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 단문의 미학은 장문을 쓸 줄 아는 다음 단계에서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길게 쓸 줄 모르면 짧게 쓸 수 없다는 말이다.

글쓰기를 많이 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예전에 잘 썼다고 믿었던 글에 상당히 거품이 많고 껍데기가 많다고 말이다. 그래서 점점 더 쓰게 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빼게 된다. 퇴고할 때에도 글을 더 써넣는 건 차라리 쉽게 느껴진다. 이미 쓴 글에서 더 빼는 게 언제나 어렵다. 군더더기 단어와 군더더기 문장, 나아가 군더더기 단락들과 군더더기 논리들을 과감히 제거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고 나는 생각한다. 좋은 글은 간결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마치 여러 번 퇴고하여 뺄 것들을 다 뺀 것 같은 글을 쓸 수는 없다. 글쓰기 초보들이 착각하는 것, 혹은 망상에 사로잡히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처음부터 단문으로 간결하고 가볍고 압축된 문장들을 잘만 하면 쉽게 구사할 수 있다고 믿는 것 말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나의 개인적인 견해이고 나의 글쓰기 한계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글쓰기 초보는 글이 짧은 게 아니라 오히려 군더더기가 많아 길어져야 자연스러운 것 같고, 그래야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남의 글을 평가하고 고치려고 하지 말고 자기가 쓴 글에서 군더더기를 찾아내고 간결하게 써보려고 퇴고의 무한루프 속에 갇혀 보는 것. 나는 이 지난한 과정이야말로 유일한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이 과정 없이 곧장 신형철이나 시몬 베유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천재이거나 바보, 둘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길게 늘어지더라도 친절하고 논리의 흐름을 살려서 글을 많이 써보려고 노력하시라. 얼마 동안은 자신의 글이 훌륭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 훌륭한 글에서 군더더기가 보이고 엉성함이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가 곧 도래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한두 편의 글을 누군가가 칭찬해 줘서 자신이 글 잘 쓰는 사람이라는 혼자만의 착각에 빠질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 실력은 그 한두 편으로 가릴 수 없다. 쌓이고 쌓인 글들의 더미가 바로 자신의 글쓰기 실력이다. 공개한 글과 공개하지 않은 글을 모두 합한 그 더미 말이다. 그러므로 글쓰기 앞에서는 언제나 겸손해야 하고 성실해야 한다. 거들먹거리는 느낌이 드는 순간은 특별히 조심해야 할 시기라고 본다. 글쓰기 실력은 하룻밤 밤샘해서 증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성실한 지속만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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