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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휴식

가난한선비/과학자 2024. 2. 13. 21:11

휴식

내가 써온 300편이 넘는 독서감상문 중 가장 긴 시간을 투자했던 작품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었다. 두 번째는 역시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이었고, 그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들였던 작품은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모략',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투르나이젠의 '도스토옙스키' 등이었다. 작품의 분량 및 난이도와 감상문에 들어간 시간이 얼추 비례했다. 어젯밤 완성한 감상문의 경우는 예외에 해당된다. 그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열 시간은 족히 사용했던 것 같다. 아마도 '악령' 다음으로 가장 많은 공을 들인 감상문일 것이다.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비판적인 글을 쓸 때에는 특히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불필요한 감정을 건드리지 않도록, 그래서 건전한 토론 혹은 대화가 될 수 있도록 나 자신이 먼저 몸소 그런 자세를 보여주고 싶었다. 글쓴이의 책임감을 나는 알기 때문이고, 지성적인 부분에 호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세나 태도 같은 부분 혹은 감정적인 부분에서 막히면 안 된다는 것을 다행히 경험으로 잘 알기 때문이다. 돈을 받고 쓴 것도 아니고, 어느 매체에 기고한 것도 아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떤 의무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글을 써냈다. 미흡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한계일 것이다. 부디 내 글이 선한 영향력으로 나타나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데에 쓰이면 좋겠다.

어젯밤 글을 올리고 나는 곧장 소설을 집어 들었다. 최은영의 단편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이었다. 첫 번째 단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고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비판적인 장문의 글을 설 연휴 때 써내느라 나름 신경을 많이 썼던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이렇게 책으로 휴식을 취한다. 그나저나 최은영은 '밝은 밤'으로 처음 읽었는데, 한국 현대 작가 중에 한강 작가 다음으로 나는 가장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세미한 감정 선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최은영의 글을 읽으면 일상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살고 있는지 알게 되는 느낌이다. 나는 이런 글이 좋다. 아끼면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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