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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3]
"If I give all I possess to the poor and surrender my body to the flames, but have not love, I gain nothing."
[1 Corinthians 13:3]
거꾸로 말하자면, 불쌍하거나 가난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는 어마어마한 구제도 사랑없이 할 수 있고, 완전히 내 몸을 던져 죽기까지한 어마어마한 희생도 사랑없이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구제와 희생, 그것도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의 구제와 희생에 사랑이 결핍되어 있을 수 있을까.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그 행위가 자신을 위한 것이었을 때 가능할 것 같았다. 즉, 전 재산을 내놓거나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극단적인 행위조차도 그 재산이나 그 목숨으로 인해 혜택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의로움을 위한 행위일 수 있는 것이다. 거지가 되기까지, 그리고 죽기까지 자기 자신의 의를 높이기 위한, 어찌보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이기적인 행위일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의를 위한 구제와 희생, 그곳에는 사랑이 없는 것이다. 사랑, 그것은 자신이 아닌 남을 향할 때 그 이름이 비로소 빛을 발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 적당하게 큰 규모의 재산과 적당하게 자기 몸을 내놓는 구제와 희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재산을 내놓느냐, 아니면 얼마나 자기 몸을 희생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위가 결정되어질 순 없는 것이다. 양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그 목적이 무엇이었냐에 따른 문제란 말이다. 특히 그 목적이 자기 의를 위한 것이었을 경우, 오히려 큰 규모의 구제와 희생이 더욱 이기적인 자아를 드러내는 행위일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그 목적이 남을 위한 것이었을 경우, 더 큰 칭찬을 받아 마땅한 행위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즉, 목적에 따라 양 극단에 처해질 수 있다.
세상엔 구제와 희생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구제와 희생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특히 선교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교회라는 이름의 가면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는 미명 하에, 결국은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는 구제와 희생이 버젓이 교회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면, 과연 하나님은 기뻐하실까? 그냥 수고했다는 말 듣는 것에 그들의 상이 모두 속해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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