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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겸손

가난한선비/과학자 2024. 4. 29. 23:07

쫓기는 건지 쫓는 건지 분별이 안 될 때가 있다. 둘은 종이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른다. 

제한적 압박은 성실한 지속의 중추다. 성실한 지속이 가능하려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야 한다. 무너지고 주저앉게 되는 시기를 견뎌내는 힘은 내가 무엇을 쫓는지에 달려있기보다는 내가 무엇에 쫓기는지에 달려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나아가 나는 쫓기만 할 뿐 쫓기는 삶을 살지는 않는다고 확신하는 마음도 일종의 교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성실한 지속도 가끔 다람쥐 쳇바퀴가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것을 과감하게 잠시 내려두고 유체이탈하듯 나의 일상의 시공간을 벗어나 내가 조금 전까지 돌리던 쳇바퀴를 가만히 바라본다. 애잔한 마음이 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큰 고민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나는 무언가를 쫓기도 하지만, 또 무언가에 쫓기기도 한다는 것을. 쫓기는 삶에 그동안 너무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웠던 것 같다. 이제 관건은 내가 무엇에 쫓기는지 가만히 살펴보는 것이다. 

내가 쫓는 것을 살펴보는 것은 미래를 향한다. 반면, 내가 쫓기는 것을 살펴보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가리킨다. 내가 서고 싶은 자리만 생각하는 이상주의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마음이 한결 편하다. 내가 서왔던 자리와 지금 내가 서있는 자리를 점검해 본다. 성실한 지속을 유지하고 계속 이어가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건 다름 아닌 겸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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