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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워지는 기분
적어도 인생 후반전은 궁극적으로 내가 아닌 남을 향해야 한다는 나의 믿음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내 인생의 전반전은 오로지 나의 확장과 증폭으로 점철되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내 이기적 의지라기보다는 시대와 문화 탓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해 보지만, 이 부끄러운 마음은 깊이 박힌 못처럼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되었고 나의 정체성의 중추로까지 자리 잡았다. 나는 탁월함과 명석함, 그리고 신속, 정확한 기술을 숭배했고 거기에 충실한 신자였다. 내 기준에 못 미치는 것들은 하등 하다고 여기기도 했다. 암묵적인 우월감에 취해 있었고 그게 성공의 가도를 달리는 자의 숙명이라 믿고 받아들였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흔적들을 일종의 부채감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삶에서의 회심의 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가고 높이 오르려는, 익숙했던 삶의 방식을 버리고, 내가 얼마나 많이 앞서 있고 얼마나 높이 올랐는지에 상관없이 현재 내가 처한 상황에서 옆과 뒤를 돌아보고 바로 그 자리에 서서 내 삶을 먼 이웃이 아닌 가까이 있는 이웃과 향유하고 싶어 졌던 것이다. 독서가 큰 힘이 되었지만, 이런 생각이 머리에 갇히지 않고 가슴을 지나 손과 발로 전해지기 위해서는 독서모임이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것 같다. 수평적으로 함께 나누는 모임은 그 이후로 내 일상의 한 조각으로 들어왔고 내 삶을 이끄는 동력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글쓰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식과 공감과 지혜의 생각들과 말들을 내 것으로 만들고 성찰과 통찰을 할 수 있는 훈련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눔의 소중한 통로도 되었다.
어젯밤 ‘도스토옙스키와 저녁식사를’ 독서모임에서 나눈 이야기 중 한 가지가 깊이 공감이 되었다. 아무나 성취하기 힘든 자리에 올랐을 때 문득 찾아온 공허함의 깊은 우물에서 탈출하는 방법이 바로 ‘나눔'이었다는 것. 앞서 가고 높이 오르면 블루오션에서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일 뿐 결코 지속력을 갖기 힘들다. 그건 마치 사치스러울 만큼 고급스러운 가구와 장식들이 가득 찬 초고층 펜트하우스에 홀로 외로이 사는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들을 모두 갖추었을 때의 아주 잠깐의 만족감은 곧 유리감옥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확장과 증폭의 말로는 부풀어 오른 풍선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고 나는 믿는다.
이해관계가 없는, 수평적인 만남. 러시아 고전 문학, 그중에서도 혼자 읽기 힘든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일 년 가까이 함께 매달 읽어오고 있다. 우리는 책과 저자를 넘어 서로를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으며 서로에게 자기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가식이나 거품 없이 담백한 고백의 귀한 말들이 매번 모임에서 터져 나온다. 진정한 자발적인 나눔의 시작은 마음을 열고 깊이 담겼던 응어리를 풀며 말하고 듣는 행위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고유한 기쁨 중 하나일 것이다. 빨리 앞서 가고 높이 올랐을 때 느낄 수 있는 희열과는 그 깊이와 풍성함에서 현저하게 다르다. 나는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점점 더 섬기고 싶은 마음이 들고, 내 마음과 시간이 잘 쓰이고 있다는 생각에서 오는 깊은 만족감이 있다. 이 채워지는 느낌.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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