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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

'닮은 듯 다른 우리' 다시 읽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24. 7. 9. 21:53

'닮은 듯 다른 우리' 다시 읽기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을 더욱 풍요롭게 해 주는 책 '닮은 듯 다른 우리'가 출간되어 기쁘고 반갑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세포생물학, 분자생물학, 유전학의 코드로 읽는 동시에 대문호의 인문학적 깊이로 생물학의 본질을 천착하는 신선하고 도전적인 책이다. 친절한 설명 덕분에 술술 읽히지만 인간다움의 심연을 응시하는 저자의 혜안이 예사롭지 않다. 문학과 생물학의 융합이라는 개척지에서 저자가 던지는 질문이 새삼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다른 이도 아니고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석영중 교수님이 친히 추천사 (사진의 빈칸을 장식한)를 써 주신 나의 두 번째 저서를 오늘 책장에서 꺼내어 다시 훑어봤다. 이 책 역시 선율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지만, 신앙서적 영역에 들어가지 않는다. 대중과학서에 속한다. 

이 책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책이 결코 아니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기 전에 읽으면 그 어렵고 두꺼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한결 쉽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쓴 프롤로그에서 몇 문장을 아래에 발췌한다.

"나는 도스토옙스키가 암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카라마조프적'인 그 무엇에 대해 주안점을 두고 전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생물학자인 내 눈에는 이 부분이 남다르게 읽혔기 때문이며, 나는 소설 속 주요 등장인물들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카라마조프적'인 것의 정체를 밝혀보고 싶었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라는 대작의 관점에서 본다면 전혀 예기치 못한 시선으로 소설을 해석한 경우가 될 것이고, 생물학 기본 개념들을 설명하는 대중 과학서적의 관점에서 본다 해도 역시나 뜻밖의 궁합으로 읽히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걸작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친부 살인사건을 이야기의 절정으로 담고 있다. 아버지에게는 세 명의 아내가 있었고, 그들 가운데 태어난 아들은 총 네 명이다. 네 명의 아들은 모두 제각기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로 그려지는데, 안타깝게도 이들 중에 아버지를 살해한 자가 있다. 한 마디로 존속 살인사건인 것이다. 살인이 벌어지자 한 명만 빼고, 세 명의 아들은 모두 용의자 선상에 오른다.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범인이 누군지 알겠지만, 나는 이 책을 쓰며 범인을 추적한다거나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이미 읽은 사람도 아직 읽지 않은 사람도 흥미롭게 생물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이 소설의 재해석에 동참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생물학자로서 나는 네 명의 아들이 서로 다른 이유에 대해서 관심 있게 살펴보려고 했다. 그래서 네 아들이 서로 다른 이유와 현상에 대한 생물학적인 해석을 더해 보았다. 이를테면, 한 아버지와 세 어머니의 유전자가 네 아들의 차이를 만드는 데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 특히 살인 공모죄 혐의를 쓴 아들과 용의자 선상에 오르지 않은 유일한 아들이 하필 같은 어머니로부터 태어났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유전학적인 해석을 해 보았다. 물론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을 쓰면서 유전학적인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해석은 조금 엉뚱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새로운 각도에서 재해석해 보면서 우리 자신의 상황과 비교해 볼 수도 있고, '유전 현상'이라고 암묵적으로 믿어왔던 것들이 단순히 무속적인 믿음에 불과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면 분명히 색다른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의미를 조금 더 부여해 보면 이 책이 출간된 2021년은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 이기도 하다."

도스토옙스키를 읽고 싶어하는 분들이 주로 하는 질문 중 하나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다. 전작을 읽긴 어렵고 대표작을 선정해 달라는 말이다. 나는 항상 두 권을 고른다. '죄와 벌', 그리고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유작이자 미완성작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기 원하는 분들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닮은 듯 다른 우리'를 먼저 읽어보시길 강력하게 추천한다.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써나간 이 책은 색다른 관점으로 소설을 보게 만들어주며, 덩달아 생물학적인 지식까지 겸비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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