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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하고 불완전한 인생에서 온전함을 경험하는 삶
마르바 던 저, '안식'을 읽고
한 해의 마지막 날 이 책을 손에 들고 생각에 잠겼다. 모든 것이 멈추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시간을 아껴서 하나라도 더 채워 넣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그 생각들로부터 오는 강박으로 인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쫓기고 있었던 것 같다. 쫓는 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쫓기는 자는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법이다.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단 멈추는 것이다. 자기 객관화는 멈춘 다음에 온다. 쫓는 자의 정체를 파악하는 건 또 그다음이다. 멈추니 깨달아졌다. 아, 내게 필요한 건 안식이었구나.
내가 아닌 남을 향한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나름대로 그 모토에 부합하는 삶을 살려고 부단히 애쓰고는 있지만, 아직 초보 혹은 아마추어여서 그런지 무엇을 해도 잔뜩 힘이 들어가는 것 같다. '되어지는 상태' 이전에 뭔가를 자꾸 '하는 상태'에서 나는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태로는 그 어떤 선하고 아름다운 일을 해도 내겐 일이 될 뿐이다. 온전히 누리며 나누는 삶이 아니라 여전히 성취하고 채우려는 삶을 연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멈추는 것. 그리고 돌아보는 것. 나에게 필요한 건 안식이라는 것. 2024년 마지막 날에 이런 순간을 맞닥뜨려 감사하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안식일 지키기가 가져다주는 많은 결과를 소개한다. 안식일 지키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잘 알다시피 십계명에 하나로 제시되어 있다. 그만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사명, 나아가 존재 자체와 깊은 연결이 될 만큼 중요한 사항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계명을 밥 먹듯이 무시하고 거절한다. 복음이 아닌 율법주의에 매이지 말아야 한다며, 십계명은 구약의 유물이라며, 시대착오적인 계명일 뿐이라며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변명도 이미 시스템화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마르바 던은 당당하게 말한다. 안식일 지키기는 우리를 율법주의에 매이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율법주의에서 자유케 한다고.
물론, 저자도 강조하다시피, 안식일 지키기는 결코 법적인 강제가 아니다. 구약의 유대인들이 하던 방식을 나를 포함한 많은 개신교도들이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대와 문화와 상황에 맞춰, 나아가 각자 자신의 환경과 헌신에 맞게 서로 다른 방법으로 안식일을 지킬 수는 있다. 예수가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하고 사람을 살렸던 것처럼, 우리도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 말씀의 본질을 살리면서 우리의 상황에 맞춰 안식일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안식일 지키기의 개념이 얼마나 실제적이고, 안식일을 지킬 때 얼마나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 준다. 저자는 이를 총 네 가지로 설명하는데, 곧 그침, 쉼, 받아들임, 향연이 그것이다. 아래 발췌문은 그것들의 요약이다.
| 안식일 지키기의 그침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창조하려고 한 여러 가지 방법을 뉘우치는 회개의 깊이를 더한다. 안식일 지키기의 쉼은 하나님의 완전한 은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해 준다. 안식일 지키기의 받아들임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믿음의 진리를 취하여 우리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실제적으로 적용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안식일의 향연은 우리의 종말론적 소망 의식을 고취시킨다. 하나님의 사랑을 현재에 경험하는 기쁨을 누리며 오는 기쁨을 미리 맛볼 수 있게 한다. |
기독교 내부의 안식일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나는 안식일 혹은 휴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엿새 일하고 하루 쉬는 패턴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패턴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효율적이고 건강하며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그 하루를 어느 날로 정할지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렇게 멈추고 (그치고) 쉬고 돌아보는 시간은 전체 삶을 더 윤택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이라면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된다. 멈추고 쉬고 돌아보는 시간을 하나님의 임재를 오로지 경험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누리는 것이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창조주이자 구원자이신 하나님이 주인이라는 영적인 사실을 다시 각인시키며 모든 것을 점검하고 다시 하나님을 향한 방향키를 바로 잡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안식일은 엿새 일한 뒤 찾아오는 휴식일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새로운 한 주를 위한 시작일의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도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안식일을 일주일 중 가장 중요한 날로 삼는 일. 전체 삶의 속도를 맞추고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기억하며 내가 누구인지, 지금, 여기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으로 안식일을 삼는 일. 그리고 나 혼자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함께 사랑을 나누며 하나님 나라를 맛보는 시간으로 안식일을 삼는 일. 깨어 있지 않으면 언제나 쫓기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숙지해야 할 일이라 믿는다. 이런 삶이야말로 세상에 속하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구별된 삶을 살아내는 초석이지 않을까 싶다. 깨달음을 넘어 구체적인 실천으로 넘어가 실제로 살아있는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불투명하고 불완전한 삶을 살아내는 우리들도 안식일의 온전함을 매주 경험하게 되면 소망과 기쁨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IVP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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