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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가장 훌륭한 베드타임 스토리텔러
옥명호 저,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생기는 일들'을 읽고
아이가 태어나고 기어 다닐 무렵부터 아이와 놀아줄 땐 항상 책이 있었다. 그림이 전부이거나 글자라곤 단어 하나 정도 있는 책이었지만. 돌이 지나고 걸어 다니기 시작할 때에도 퇴근하면 씻고 아이를 목욕시킨 후 방바닥에 앉아 다리 사이에 품고 간단한 책을 읽어줬다. 그러면 쉬지 않고 움직이던 아이는 가만히 아빠의 품 안에 앉아 아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가 네 살이 되었을 때부턴 본격적으로 매일 자기 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 후 3년간 떨어져 지내던 아내가 내 역할을 대신하게 되면서 그만두었는데 그때가 이미 ‘베드타임 스토리' 4년 차가 된 시기였다. 갑자기 영어를 사용한 이유는 내가 본격적으로 읽어준 이야기책이 모두 영어책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초창기 나는 아이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면서 영어 실력을 늘릴 수 있었다. 발음도 악센트도 교정하면서 말이다.
가장 많이 읽었던 책은 탐정소설이었다. 이제는 열여섯 살이 된 아들에게 어제 물었다. 아빠가 미국에서 책 많이 읽어줄 때 기억나?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뭐였어? 그랬더니 역시나 ‘무슨무슨 미스터리‘ 등등을 얘기했다. 약 4년간 거의 매일 의식처럼 행하던 베드타임 스토리 시간은 나나 아들에게 깊이 뿌리내린 추억인 것이다. 어제 내게 대답하던 아들의 표정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사춘기 청소년이라 예전과 달리 말도 줄었고 별 이유 없이 반항도 하는 아들에게서 오랜만에 보는 아이의 얼굴이었다.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 책은 아이가 중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십 년이 넘도록 베드타임 스토리를 해준 한 아빠의 체험 이야기이자, 아빠가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리고, 이 거룩한 일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권면을 담고 있다. 저자의 필력이 예사롭지 않은데 한 페이지를 읽어도 밀도 높은 양질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을 읽는 큰 매력 포인트일 것이다.
저자는 두 아이의 아빠로서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기까지 거의 매일 밤 책을 읽어줬다고 한다. 베드타임 스토리텔러로서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무엇인가를 십 년간 지속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것을 해낸 사람은 내공이란 걸 습득하지 않을 없기에 이 책을 읽어 봐야 하는 이유는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싶다. 실제로 이 책엔 농축된 그의 노하우와 지혜가 녹아 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은 아빠라면, 혹은 남편에게 권하고 싶은 엄마라면 꼭 읽어보길 강추한다.
저자는 여러 가지 스타일의 책을 시도해 보았는데 이야기책이 가장 괜찮았다고 말한다. 나 역시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탐정소설을 가장 많이 읽어주었지만,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책을, 그러니까 굳이 장르로 분류하자면 문학, 소설이 가장 아이와 함께 하기에 좋았다. 무엇인가가 궁금하고 더 읽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을 아빠로서 단 한 번이라도 마주하게 된다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단박에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읽어주는 이나 듣는 이나 한 마음으로 그다음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하는 상황. 문학적 상상력과 창의력이 샘솟듯 터져 나오는 그 내면의 변화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또한 아이의 나이에 따라 읽어주기에 적절한 책들의 리스트도 친절하게 제공한다. 나 같은 경우엔 아이와 함께 자주 공공도서관에 가서 영어책을 거의 닥치는 대로 빌려와 읽어주었지만, 베테랑의 엄선된 리스트는 한국에 거주하는 베드타임 스토리텔러로서 초보 아빠들에겐 유용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아들이 이제 열여섯이다. 아이를 보면 언제나 미안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앞선다. 못났던 내가 성장하고 변화하는 시기를 그대로 옆에서 목격한 산 증인이 바로 아들이었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지만 충분히 사랑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무너지기도 한다. 그래도 나 만큼 아이와 함께 아빠로서 시간을 많이 보낸 경우가 또 있을까 싶은 마음에 약간은 뿌듯한 기분도 느낀다.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아들에게 유일하게 잘해준 것 하나가 바로 책을 꾸준히 읽어주었다는 사실이다. 절대 손해 볼 일 없다. 하루에 십오 분에서 삼십 분 정도만 내면 된다. 그것의 수백 배 수천 배의 기쁨과 만족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기회가 있는 아빠들은 오늘부터 당장 시작하길 바란다.
#옐로브릭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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