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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자발적인 결핍

가난한선비/과학자 2025. 5. 29. 13:53

자발적인 결핍

'당신이 생각하는 바가 당신이다 (You are what you think)'는 현실과는 상관없는 이상일뿐이다. 대신 ‘당신이 사랑하는 바가 당신이다 (You are what you love)‘가 인간을 잘 설명해 준다. 

여기서 사랑하는 것은 습관 혹은 관성을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지 않고 하는 것들의 총체다. 우리는 생각한 대로 살지 않고 살아온 대로 살지 않는가. 잠시만 자신의 삶을 돌아봐도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명제가 참이라고 인정한다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습관이라는 말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바른 생각을 해도 습관으로 젖어들지 않으면 힘이 없다. 생각과 말이 다를 수 있고, 생각과 행동이 다를 수 있다. 아니, 아주 많은 경우 다르다. 인간은 모순되고 이율배반적인 본성을 가진다. 그래서 많은 지식들은 삶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삶 위에 부유한다. 삶과 일체 된 지식만이 참 힘을 가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습관을 바꿀 수 있을까? 여기 현실적인 제안이 있다. 자발적인 결핍을 애써 취하고 버리지 말라는 것. 이는 어제 기초과학연구원 과학문화센터 3층에서 참가자 65명과 함께 진행되었던, 나의 네 번째 저서 ‘세포처럼 나이 들 수 있다면’ 북토크의 주제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강연 제목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그리고 추천사를 써주셨던 이정모 작가님의 표현을 빌려 ‘우아하게 나이 드는 법’이라고 했지만, 내가 말하고자 했던 본질은 일상에서의 저항이었다. 

저속노화의 일환으로 나는 일상에서의 저항을 세 가지로 제안했다. 편리함에 저항하기, 게으름에 저항하기, 그리고 말초적 유희에 저항하기. 먼저, 편리함에 저항하는 우리의 실천은 자발적으로 불편함을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둘째, 게으름에 저항하기 위한 실천은 자기와의 약속을 지켜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초적 유희에 저항하기 위한 실천은 자기 절제로 좀 더 중추적이고 의미가 있는 가치를 좇아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제안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게 되면 ‘자발적인 결핍을 애써 취하고 버리지 말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리는 진부함 속에 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내지 못하는 것들 가운데 거한다.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알고서도 안 하기로 선택한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다. 원인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이 처한 한계일지도 모르지만, 이 한계는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불가능의 가능성이랄까. 우리는 가닿지 못하더라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이왕이면 즐겁고 멋있게, 건강하고 우아하게. 

일상으로 녹아든 지식만이 삶이 되고 그것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 지식이 삶 위에 부유하는 가장 큰 원인을 나는 편리함과 게으름과 말초적 유희에서 찾는다. 알면서도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살면서 은밀한 죄책감과 열등감에 시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 하나로써 나는 ‘자발적인 결핍’을 제안하는 것이다. 일부러 불편함을 택하고, 게으름에서 오는 쾌락보다 깨어 있는 데에서 오는 기쁨을 택하고, 말초적인 유희가 빠른 속도로 가져오는 궁극의 허무가 아닌 중추적이고 의미 있는 일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느지막한 충만함을 택하라는 것이다. 바보에서 벗어나고픈 사람들, 긴 잠에서 깨어나고픈 사람들, 우물 안에서 탈출하고픈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방향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하면 좋겠다. 결핍은 충만의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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