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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
큰 상실을 겪고 나면 남은 인생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처음보다 작은 캔버스를 고르게 된다. 어느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조금 더 작은 삶에 스스로를 밀어넣고 제한하게 된다.
소심해진 거라고, 용기가 없어진 거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상실 이전에 골랐던 캔버스가 필요 이상으로 컸던 것은 아니었을지. 그래서 상실 덕분에 비로소 나에게 맞는 크기의 캔버스를 고르게 된 것은 아닐지. 작아진 게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이를테면 허영, 교만, 열등감 등을 이제야 버릴 수 있게 된 건 아니었을지. 이 작아짐은 축소와 제한의 의미가 아닌 재정비와 성숙의 의미를 띠는 건 아닐지. 이것이 상실이 남긴 선물은 아닐지.
그러나 이런 재해석을 하는 데에 있어 언제나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합리화’라는 단어다. 우린 마침내 올바른 해석을 하게 된 것일까, 아니면 상실을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한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일까. 상실 후 이런 깨달음이라도 없다면 오게 될 그 허무함과 절망감을 피하고자 자동방어본능이 작동되어 한 발 먼저 손을 쓰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혼란스러움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보는 관점에 따라 성숙과 위선도 동전의 양면일 수도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 어느 쪽이 맞는 걸까? 그리고 만약 여기에 맞고 틀림이 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일까.
정답을 찾으려고 하기보단 이런 갈등과 혼란스러움을 우리네 인생의 한 부분임을, 그래서 누구나 겪는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공감하며 서로 나누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건 모두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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