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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진리를 맛본 자의 숙명에 대하여
강유원 저, '철학 고전 강의' 2부를 읽고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시도한 자연학에서 인간학으로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진전시켰다고 한다. 그 진전은 '좋음의 이데아'에 관한 논의에서 살펴볼 수 있다. 플라톤의 관점으로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 세계에 대한 확실한 앎이 아니라 참으로 좋은 것에 관한 앎이다. 이 앎의 대상이 바로 '좋음의 이데아'이다. 플라톤의 '국가'는 바로 이 '좋음의 이데아'에 관한 탐구를 태양의 비유, 선분의 비유, 동굴의 비유로 보여준다. 참고로 이데아는 초월적이고 불변하는 본질적 세계를 말한다.
태양의 비유에서는 가시계(현실 세계)와 가지계(이데아 세계)를 비유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잘 보려면, 잘 보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엇인가를 잘 알려면, 잘 알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은 좋음에서, 태양에서, 외부에서 온다. 이 비유를 통해 플라톤은 '좋음'을 태양과 같다고 말하며 태양이 있어야 빛이 생기고 우리가 시각을 통해 사물을 볼 수 있듯이 좋음이 있어야 우리가 감각이 아닌 이성을 통해 무언가를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감각 세계의 태양처럼 정신세계의 좋음은 근원적인 힘을 가진다는 말이다.
동굴의 비유에서는 태양의 비유에서 가시계와 가지계를 비유하여 현실세계와 이데아세계를 설명하듯 동굴 안과 동굴 밖을 비유한다. 동굴 안은 현실세계이고 동굴 밖은 이데아세계이다. 동굴 안은 진짜 세계라고 믿었으나 가짜 세계이고, 동굴 밖이야말로 진짜 세계이다. 동굴 안은 인간이 감각할 수 있는 가시계이고, 동굴 밖은 이성을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는 가지계이다. 이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 약을 먹기 전 세계와 먹은 후 세계의 차이와도 같다. 플라톤은 이렇게 줄곧 이분법으로 현실과 이데아, 감각계와 이성계, 가시계와 가지계, 동굴 안과 동굴 밖, 가짜 세계와 진짜 세계로 나누어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다. 즉 인간이 감각으로 경험하는 세계는 진짜인 것 같으나 가짜이고, 이성의 눈으로 꿰뚫어 보는 세계만이 진짜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동굴 밖을 경험한 자가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가 진짜 세계를 말하는 장면에서 발생할 일들이 그려진다. 과연 동굴 안 사람들은 동굴 밖을 경험한 자의 말을 믿을까? 동굴 밖은 위험천만하다고 말하며 그를 죽이려고 하거나 미친놈 취급하지 않을까. 과연 이건 알고 모르고의 문제일까? 믿음과 선택의 문제로 확장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일은 우리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하다. 무언가를 먼저 깨닫고 경험한 자, 즉 선구자 혹은 개척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인 것이다. 이는 '매트릭스'에서 빨간 약을 먹기로 결정하는 자가 소수인 이유와도 같다. 자신이 속한 곳이 가짜 세계여도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 그곳에서 왕 노릇할 수만 있다면 진리가 무엇이든 정의가 어떻게 되든 아무 상관없이 정착하여 세력을 키우며 사는 사람들. 진리를 전하러 온 사람을 잡아 가두어 죽이고 마는 사람들. 이런 관점에서 동굴 비유는 21세기 현재에도 유효하다.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담아내기 때문일 것이다.
동굴 밖을 경험한 자의 숙명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과연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진리를 말해줘야 할까? 그렇게 되면 핍박받게 될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텐데도,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일을 감행해야 할까? 당신이 이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강유원이 해석하는, 변증술적 논변의 힘을 가진 철학적 통치자의 숙명을 생각한다. 좋음의 이데아는 이론적인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천적인 삶까지 아우르는 것이라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먼저 깨달은 자, 먼저 진리를 맛본 자, 먼저 진짜를 경험한 자의 숙명을 가슴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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