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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에서 생명으로
| 모든 신앙인이 저마다의 경험이 있겠지만, 저에게도 자궁을 지나고 나팔관을 통과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마흔 언저리, 인생의 낮은 점을 지나면서 신앙에 깊은 회의가 찾아왔습니다. 확신에 차 있던 많은 것들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의심의 구렁텅이로 떨어졌습니다. 기도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손에 꼭 쥐고 있던 것들은 저의 내면세계 깊은 곳에 뿌리내린 채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저의 신앙은 성공 지향적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성공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던 저에게 신앙은 빛나는 액세서리일 뿐이었습니다. 그저 제가 바라던 인생의 목표인 성공과 출세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덮어줄 효율적인 완충재나 그럴듯한 포장지 역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은혜의 과정 없이 은혜의 결과만을 취하고, 은혜를 입은 자가 아닌 은혜를 입은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드러내고 싶은 건 예수님이 아닌 저 자신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위선자였습니다. 게다가 저는 낮아지는 것에는 관심 없고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것에도 실패했지만 오기와 객기로 충만한 미숙한 신앙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그건 삶이 배제된 거짓된 신앙일 뿐이었습니다. 미성숙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나 자신만 알고 내 능력과 실력만을 믿었습니다. 마치 초기 추진력에 의해서 난자에 다가서려 했지만 나팔관 진입도 하지 못할 게 뻔한 수억 개의 정자 무리 중 하나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나름대로 상승기류를 타고 인생의 높은 점을 지나고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연료가 떨어진 채 사막 한가운데로 진입하는 자동차일 뿐이었습니다. 저에게 필요한 건 마치 난자로부터 오는 신호를 예민하게 감지하고 올바른 방향을 잡는 정자처럼 자신의 힘이 아닌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구원의 신호였습니다. 네, 저에게는 그분의 은혜가 필요했습니다. |
이상 '생물학자의 신앙고백' 1부 사망에서 생명으로 47-48페이지에서 부분 발췌한 글입니다.
오늘 2025년 상반기 인세를 받았습니다. 제작년에 출간되어 작년에 세종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던 저의 세 번째 저서였던 '생물학자의 신앙고백'은 총 10권이 팔렸다고 합니다. 여전히 유명인들(대형교회 목사님들, 유명 학자들)이 쓴 책들이 종교/기독교 영역에서 베스트셀러에 머물고 있더군요. 신학교에 발을 딛지 않은, 소위 말해 평신도가 쓴 책들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여전히 다양한 목소리들은 들리지 않고 주목해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내러티브가 들려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엔 목사와 신학자 이외의 그리스도인들이 훨씬 많은데 말이지요.
'생물학자의 신앙고백'은 생물학을 공부하고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한 그리스도인이 발생생물학을 소개하면서 인간의 발생 과정과 신앙의 성장 과정을 빗대어 쓴 책입니다. 여러분과 같은 일개 그리스도인의 고민과 신앙관과 일상을 담아냅니다. 관심을 가져도 될 만한, 발생생물학 공부와는 거의 무관한 책입니다. 과학책이 아닌 신앙책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전문적인 영역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어 신앙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더 많이 출간되길 저는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도 관심을 기울여 주시고 목소리를 들어 주시고 또 내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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