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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자 할머니 이야기
| 제가 태어나고 자란 부산에서는 국자 위에 설탕을 올리고 천천히 데우면서 끈적한 액체가 되도록 녹인 뒤 베이킹 소다를 조금 넣 어 밝은 갈색이 나게 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액체를 국자에서 분리한 뒤 천천히 굳히면서 여러 모양으로 만들어 과자처럼 먹는 간식, 일명 ‘달고나’를 ‘쪽자’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어릴 적엔 동네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쪼그리고 앉아 쪽자를 만들어 먹는 장면 을 흔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자주 먹으면서 행복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비록 엄마에게 자주 먹으면 이가 썩는다고 혼나기도 했었지만, 그 당시를 떠올리면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지어집니다.
저는 쪽자가 달고나의 경상남도 방언이라는 사실을 대학에 가서야 알게 되었답니다. 대학에 가니 여러 지방 출신들이 저마다 달 고나를 다르게 부르더군요. 어떤 사람은 ‘뽑기’라고 부르고, 어떤 사람은 ‘띠기’라고 부르고, 또 어떤 사람은 ‘똥과자’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똑같은 사물을 다른 이름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 저에겐 놀랍기도 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방언이라는 것도 생명체처럼 ‘다양성이 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쪽자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저에겐 항상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 골목 끝에 있던 쪽자 집 할머 니의 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연세가 일흔은 되셨던 것 같습니다. 백발에 허리도 구부정하셨는데, 두 손 모두 손가락이 뭉툭하고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쭈글쭈글한 손이었는 데다 손가락도 안으로 말려 있는 것 같아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았지만, 저를 포함한 동네 아이들은 쪽자를 해 먹으면서도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디선가 다치신 것 같기도 했고, 소아마비처럼 안짱다리셨기에 그저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짓궂은 아이들은 마귀 할머니라고 부르기도 했지만요. 아니, 어쩌면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그저 쪽자에 눈이 팔려 동그라미, 별, 세모, 토끼 등의 문양이 찍힌 움푹 파인 곳을 조심스럽게 핀으로 누르면서 그 모양을 손상되지 않게 떼어내어 쪽자를 하나 더 먹을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는 아이일 뿐이었던 것이지요. 할머니의 아픔을 헤아릴 마음도 능력도 없었던 것입니다. |
이상 ‘세포처럼 나이 들 수 있다면’의 3부의 첫 번째 꼭지 ‘손가락, 발가락: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세포들’의 도입부 중 뒷부분을 발췌한 부분입니다. 이전 포스팅에서는 손가락이 다섯 개를 넘는 다지증에 대한 도입부였다면, 이번 포스팅은 손가락이 다섯 개 미만인 합지증에 대한 도입부입니다.
벌써 이 책이 출간된 지 6개월이 지났네요. 날벼락 같았던 계엄, 내란으로 혼란했던 시기에 출간되어 더 정신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독자들의 관심도 받지 못했던 것 같고요. 저자인 저로서는 무척이나 아쉬운 부분입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홍보해 볼 생각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출판사와 상의하여 노화를 다루는 1, 2부가 앞으로 배치되고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인 3부는 뒤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3부가 발생생물학의 정수를 다루는 부분이랍니다.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것도 3부 때문이었고 가장 먼저 쓴 것도 3부였답니다. 출간된 지 6개월 만에 3부를 소개하고 싶어서 시간 날 때마다 한 꼭지씩 부분 발췌해서 포스팅하고 있습니다.
선천성 기형을 가지고 살아가는 소수자들을 발생생물학을 통해 이해하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인식론적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좋은 길잡이가 될 줄 믿습니다. 아직도 구매 안 하신 분들이 있다면 얼렁 서점에 가셔서 직접 구매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네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선물용으로도 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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