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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생일 파티
| 중학생 시절 엄마의 친구 집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집 둘째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가족도 친척도 아니고, 친한 친구의 생일도 아니었으며, 돌잔치처럼 특별히 기념할 만한 날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날 엄마가 저와 동생을 데려간 이유를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날 저는 엄마에게서 평소와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엄마는 그날에 뭔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인사를 주고받고 그 집 안으로 들어서서 그날의 주인공을 본 순간 의아했던 모든 것이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가 왜 달라 보였는지, 왜 그 생일이 특별했는지 저는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미간은 제가 평소에 보던 사람들의 그것보다 눈에 띄게 넓었고, 눈엔 초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입을 계속 헤벌리고 있었습니다. 입가엔 침이 흐르고 있었는데 어린아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그것과는 달라 보였습니다. 아이는 처음 보는 사람이 들어왔는데도 인사조차 하지 않았을뿐더러 한눈에 보기에도 지적장애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기도 했고, 순박한 느낌도 받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그 아이가 어딘가가 아프다고 여겼던 듯합니다. 처음 보는 광경 앞에서 저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었고 왜 그런지 몰라도 놀랍다기보다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제가 뭐라고 물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엄마가 제게 어떤 설명을 해주셨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처음 듣는 단어 하나는 저를 묘한 감정에 빠뜨렸습니다. 그 단어는 바로 다운증후군Down syndrome이었습니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사람을 처음 본 그날은 어릴 적 동네 아는 형의 여섯 번째 손가락을 본 이후 제게 가장 강렬한 기억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
이상 ‘세포처럼 나이 들 수 있다면’의 3부의 네 번째 꼭지 ‘다운증후군: 경이로운 우연의 결과, 염색체’의 도입부를 발췌한 부분입니다.
벌써 이 책이 출간된 지 6개월이 지났네요. 날벼락 같았던 계엄, 내란으로 혼란했던 시기에 출간되어 더 정신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독자들의 관심도 받지 못했던 것 같고요. 저자인 저로서는 무척이나 아쉬운 부분입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홍보해 볼 생각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출판사와 상의하여 노화를 다루는 1, 2부가 앞으로 배치되고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인 3부는 뒤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3부가 발생생물학의 정수를 다루는 부분이랍니다. 제가 이 책을 쓰게 된 것도 3부 때문이었고 가장 먼저 쓴 것도 3부였답니다. 출간된 지 6개월 만에 3부를 소개하고 싶어서 시간 날 때마다 한 꼭지씩 부분 발췌해서 포스팅하고 있습니다.
선천성 기형을 가지고 살아가는 소수자들을 발생생물학을 통해 이해하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인식론적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좋은 길잡이가 될 줄 믿습니다. 아직도 구매 안 하신 분들이 있다면 얼렁 서점에 가셔서 직접 구매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네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선물용으로도 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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