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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하나님나라 복음

가난한선비/과학자 2016. 10. 29. 01:45

1. 우익의 복음


기독교의 복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죽으셨고 우리는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죽어서 천국에 간다고 답할 것이다. "구속"의 한 이론에 지나지 않는 것이, 이런 식으로 예수의 본질적 메시지의 전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믿음이 보장하는 유일한 결과는 "단지 용서받는 것"이 되고 만다. 우익의 복음에서는, 믿음의 절대적 표시가 되는 행동도 없고 그렇다고 믿음에 의해 절대적으로 배제되는 행동도 없다. 오직 믿음 이외에 뭔가가 더 있어야 된다는 주장은 순전한 은혜에 "행위"를 더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우익 입장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복음"이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천국 입성의 "길"을 마련해 주셨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사후의 삶에 대해서는 그리스도를 믿지만, 오늘의 삶에 대해선 믿지 못한다. 또한 영원한 운명에 대해서는 그분을 신뢰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련된 일"에서는 신뢰하지 못한다. 이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고 하지만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예수를 통해 마련된 죄 용서의 방편을 믿는 것 (죄 문제를 제거해 주는 역할만 믿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마치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에 가르치시고 보여주신 하나님나라의 삶이 전혀 필요가 없으며, 오로지 태어나심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하심만 있으면 되는 듯하다. 우익의 복음에서는 이렇게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삶과 신앙이 분리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인 것이다.


2. 좌익의 복음


신학적 스펙트럼의 반대쪽 극단에는 복음의 이슈 및 복음 자체에 대한 견해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에게 복음이란 하나님이 친히 해방과 평등과 지역사회를 지지하신다는 것, 예수가 그런 것들을 증진시키기 위해 혹은 적어도 그런 것들의 결핍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 그리고 그분이 그런 것들을 중시하는 모든 노력과 동향 속에 "지금도 살아계시다"는 것이다. 신학 좌익에게는 단순히 그것이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되었다. 또한 좌익의 신학은 임재하시는 하나님이나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전혀 믿지 않는 이들과도 얼마든지 공유할 수 있는 사회윤리의 형태로 변화했다. 현대 기독교 좌익의 복음이 강조하는 것은 "사랑"이다. 이들이 믿는 진짜 예수는 "압제받는 이들, 남들보다 못한 이들과 동화하여 그들을 사랑하는 분"일 뿐이다. 이들은 초월적인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정의하는 사랑의 의미는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고 해방시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도록 해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사실상 이런 "복음"은 저 유명한 아메리칸 드림의 또 다른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그 밖의 관련 단어로 "평등주의", "행복", "자유" 등을 들 수 있겠다. 좌익의 복음에서 예수님은 신성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그저 인간 사회제도에 필요한 올바른 모델에 불과하다.


3. 하나님나라 복음


이렇듯 기독교 우익의 입장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곧 죄를 사함 받는 것이고, 좌익의 경우에는 사회악의 제거에 확실하게 헌신돼 있으면 곧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란, 죽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나, 사회의 사랑과 정의에 분명히 헌신돼 있는 사람, 둘 중 하나이다. 그뿐인 것이다. 그렇다. 이러한 괴리가 벌어지고 있는 시대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좌익과 우익의 공통점은 어느 진영도 개인의 변화에 필요한 논리적 지식과 실제 방향, 그리고 그에 부합하는 일상의 구속에 관한 일관성 있는 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은 분명 풍성한 삶과 순종을 향한 개인의 변화를 강조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예수에 대한 본질적 메시지로 가르쳐지는 내용이 정작 그분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삶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인간의 현재 삶에서, 스승으로서의 예수는 증발해 버렸다.

삶과 신앙의 분리와 스승 예수의 부재에 대응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바로 하나님나라 복음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 주제였으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는 해결책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삶의 현재적 실체를 예수의 말씀과 인격을 믿는 믿음을 통해 정확히 배워야 하며, 그 배움을 통해 말과 삶으로 세상에 똑바로 제시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없다면, 우리가 제시하는 어떤 복음도 사람들을 예수의 제자의 삶과 하나님나라의 개인적 실현으로 인도하는 본연의 특성을 지니게 할 수 없다. 삶과 신앙은 철저히 분리된 체로 마치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일 뿐"이라는 무책임한 이중적인 삶의 지루한 연장선에 사람들을 불러다 놓을 뿐일 것이다.


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모략"에서 발췌 및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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