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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이란? 

장강명 저, ‘먼저 온 미래’를 읽고

제목 ‘먼저 온 미래’는 뒤표지 상단에 박힌, 마치 신문기사를 오려 놓은 듯한 문장으로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바둑계에 미래가 먼저 왔다고 생각한다. 2016년부터 몇 년간 바둑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앞으로 여러 업계에서 벌어질 것이다.” 저자 장강명 작가 개인의 생각일 뿐일까? 내 눈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이미 온 미래’를 기자 출신의 세밀한 눈으로 관찰하고 냉철한 머리와 부지런한 손과 발로 분석한 뒤 잉태한,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경고 내지는 예언으로 보인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 위치한 한 예언자의 종말론적인 메시지로 들린다. 저 두 문장의 위치가 책 뒤표지라는 점도 기가 막힐 노릇이다. 책을 다 읽고 한숨을 쉬며 멍하니 있는데, 불현듯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난 뒤표지 글귀를 무심코 읽으며 나는 소름이 돋았다. 책 읽기 전과 후, 같은 문장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던 것이다. 특히 두 번째 문장은 더 이상 예언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먼저 온 미래‘는 팩트였다.   

논픽션인 이 책의 발단은 2016년 구글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와 당시 대한민국 최고 바둑기사 이세돌 9단 사이에서 치러진,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알파고가 4승 1패로 승리한 역사적인 대국이다. 저자 장강명 작가는 이 사건을 세계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 중 하나로 본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 의심 없이 믿어왔던 곳까지 침투하여 믿을 수 없이 압도적인 역량으로 점령하고 정복해 버린 공식적인 첫 사건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인간은 그 이후 바둑계를 초월하여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 이를테면 무엇이 인간다운 것인지, 무엇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좀 더 확장하면 신학적이기도 한)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판단한다. 우리가 아무 의심 없이 믿어왔던 것들, 자명하다고 믿어왔던 것들의 경계가 무너졌을 뿐 아니라 그것들의 정의 자체가 존폐 위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바둑 몇 판의 패배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사건이 가진 함의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단순한 르포르타주의 경계를 훌쩍 넘어선다. 인간의 존재론적인 물음까지 하게 만드는 철학책이자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사유하게 만드는 인문학책이며, 시대와 사회 전반적인 영역에 걸친 통찰을 보여주는 사회과학책이다. 인간 본성을 깊이 통찰하게 만드는 이 책에 대한 애정하는 팟캐스트 ‘책걸상’의 판단은 옳다. 나 역시 단연 올해 최고의 논픽션이라 생각한다.  

이 책이 냉철하고 객관적인 팩트만을 나열한 건조한 책이라거나, 인터뷰 기사들만을 추리고 육하원칙에 따라 기술한 보고서 같은 딱딱한 책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저자는 바둑계에 먼저 온 미래로부터 시작하여 인간이란 무엇인지, 인간다운 것은 무엇인지 자신의 통찰을 나누며 심도 있게 물을 뿐만 아니라, 저자 자신이 몸담고 있는 문학계에서도 이미 온 미래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이야기하며 솔직한 한 인간의 두려운 감정을 토로한다. 이 부분을 읽는 독자들은 저자가 문학계를 이야기하듯 자연스레 자신이 속한 영역(업계)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기초과학, 그중에서도 생물학계에 인공지능이 침투하여 맹활약을 벌이고 있는 상황들(내가 직접 참여하진 않지만, 나는 알파폴드로 새로운 크리스퍼 구조를 예측하고 만드는 공동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는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 소속 선임연구원이다)을 떠올리며 저자의 두려움에 깊이 공감했다. 저마다 다른 영역에 속해 있어도 우린 모두 나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위로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이 절대 넘어설 수 없는 한계 앞에서 절망을 느껴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이 인공지능이 쓴 논픽션이 아니라 인간이 쓴 논픽션이라는 사실이 나는 다행스럽게 여겨졌고, 인간다움의 한 조각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 무엇인지 사유하는 건 다층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생물분류학적인 접근으로는 다른 동물과 비교하며 모든 면에서 인간의 우월성을 당연하게 여기는 인간중심적인 관점을 들 수 있다. 인류학적인 접근으로는 인간의 뇌 크기라든지 직립보행으로 인해 자유로워진 손으로 만든 도구의 사용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비교할 때 떠올릴 수 있는 인간의 고유한 특징은 무엇보다 창의성일 것이다. 여기에는 인공지능 역시 기계의 한 부류로 볼 때 아무리 계산이 빠르더라도 단순반복의 연장선에 있을 뿐 기계를 만든 인간의 창조성은 결코 따라 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바둑이었고, 바둑은 체스와 달리 단순한 게임이 아닌 무수한 경우의 수로 이뤄지는 하나의 예술로써 인간의 창의성이 가장 잘 발현되는 영역이라 믿어져 왔다. 인공지능이 체스를 정복했을 때에도 바둑계에서는 여유 있는 웃음을 지을 수 있었던 이유다.  

알파고의 승리는 인공지능이 가질 수 없다고 믿었던, 혹은 가져서는 안 된다고 믿었던 인간의 고유한 창의성까지 침범하여 정복해 버린 사건이었다. 두려움까지 느끼게 만드는 인공지능의 능력에 대해서 인간이 느낀 건 단순히 어떤 상실감과 좌절감을 넘어 인간의 고유성과 인간의 존재 자체가 초라해진 듯한 기분이었다. 마지막 보루를 빼앗긴 인간은 긍지를 잃었고 교리처럼 믿어왔던 인간의 위대함 혹은 우월성마저도 인공지능에게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언급했다시피 이 현상은 바둑계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다. 먼저 시작되었을 뿐이다. 저자가 속한 문학계에서도 이미 인공지능은 ‘안나 카레니나’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같은 대작은 아니더라도 짧은 에세이나 소설은 써내고 있다. 역시 창의성의 영역이라고 믿어왔던 인간의 마지막 보루 하나가 인공지능의 영향력 아래 조금씩 잠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은 이미 저자에게 두려움을 불러왔으며, 앞으로 급속도로 발전될 인공지능의 권세가 과연 어떤 일을 벌일지에 대해서는 저자 역시 모르기에 섣부른 판단을 자제한다. 단, 책의 뒷부분에서 여러 합리적인 대안 혹은 예상을 내놓는다. 무엇 하나 확실한 건 없지만 나는 이 부분에서 역시 인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불확실성 혹은 모호성이랄까 하는, 어쩌면 우리가 피하거나 감추고 싶은, 나약하다고 믿어왔던 인간의 속성들이 인간다움의 중추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우리가 믿어왔던 우월성이 아닌 열등성이 인간다움의 본질일지도 모른다는 이 생각은 나를 경악하게 만들기도 했다. 모든 걸 거꾸로 생각해야 할지 모른다는, 어쩌면 우리가 믿어왔던 자명한 것들을 의심하고 다시 들여다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역시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개별성을 띤 한 사건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재해석이 보편적인 통찰을 이끌어내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인간이라면, 특히 한국인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겨난다. 과연 인공지능이 이 책을 읽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잠식당하지 않고 인간다운 무언가를 지키려고 하는 어떤 고결하고도 절박한 의지를 읽어낼까? 아니면 인공지능에게 결국 패배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읽어낼까? 이러한 인간의 몸부림이 혹시 가소롭다고 판단하진 않을까? 수많은 궁금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저자는 말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가 현재 예상하고 있는 건 모두 틀릴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예상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무한반복의 시나리오 가운데 인공지능의 발전은 가속화될 것이다.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면서도 그것의 발전을 멈출 수 없는 인간. 결국 남는 건 최종심급 자본의 힘일까? 무엇이 문제인지 알면서도 자멸을 향하는 모순된 존재자 인간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인간다움의 하나로써 모순과 이율배반성을 꼽게 된다. 모호성, 불확실성, 모순, 이율배반성, 이런 속성이 결국 인간이 인간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책을 덮고도, 이 글을 다 쓰고도, 계속 남아 있다. 비록 저자는 상상력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며 책을 온건하게 마무리하고 나 또한 조금은 무력하게 동의하지만 말이다. 

#동아시아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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