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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식상함

가난한선비/과학자 2026. 3. 25. 18:24

식상함

틀에 박힌 생각과 전개, 남들이 들어도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을 것 같은 미리 계산된 멘트들, 자신이 정해놓은 바운더리 안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이성을 넘어서는 강력하고 오래된 관성 같은 믿음. 나는 이런 것들을 식상하다고 말한다. 진부하다는 표현도 좋겠다. 이를 달리 말하면 생명력이 없다는 말이다.

가장 이해 안 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식상함 혹은 진부함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놓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누리는 부류다. 아니, 진짜 안정감을 누리는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그런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지만. 이 글에서는 이들이 내게 안겨준 놀라운 점 몇 가지를 적어보려 한다.

첫째, 이런 부류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자기 생각이 없는 이들이 어떤 공동체 내에서 발언권을 쥐고 있는 경우도 은근히 많다. 이런 공동체는 내겐 사실 감옥과도 같다. 생각이 다른 의견은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강력한 믿음, 다수가 맞다고 하는 의견에 동참해야 안전함을 느끼는 믿음이 공동체 내에 견고하게 박혀 있어서 절대 다른 의견은 끼어들 수 없다. 이단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이들은 다른 의견을 내면 겉으론 들어주는 척하지만 듣지 않는다. 이미 판단하고 정죄한 이후 불쌍하다는 마음으로 바라볼지언정 절대 자신들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다수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맞다. 이들에겐 다수가 장땡이다. 다수면 된다. 아, 이 얼마나 민주적인가? 젠장.

둘째, 이런 부류가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곳 중 하나가 교회라는 사실이다. 교회에 다니다 보면 (나도 교인이 된 지는 40년이 다 되어간다. 미국 교회 포함 개신교 내의 여러 교단을 다 경험해 봤다) 교인들과의 대화에서 좋아할 법한 대화가 어떤 것인지 분별하게 되는데, 그런 대화만 주야장천 해대는 공동체는 내가 경험한 바로 다들 좀 있는 집안들, 그러니까 어느 정도 사는 분들, 혹은 사는데 별 문제가 없는 분들로 이뤄져 있었다. 이들이 내는 고민거리 중 내가 충격을 받은 것 하나는 삶이 너무나도 안정적이어서 무료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다나 뭐라나.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그럼, 이것저것 시도해 보세요. 이런저런 현장으로 나가서 지금도 아파하는 이웃들을 직접 만나 보세요. 그렇게 집안에 가만히 틀여 박혀 있고 경제도 여유로운데 무료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고백하건대 실제로 나는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그런데 반응이 놀라웠다. 그는 고민을 털어놓고 기도해 달라는 게 아니라 자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약한 척하는 자랑. 그 고단수의 자기 자랑. 정말 가지 가지 한다 싶었다. 역겨웠다. 가진 자들이 모여 우아하게 차나 마시고 떠들며 해대는 짓거리라곤 저런 것밖에 없나 싶었다. 나는 그 이후 그 공동체를 떠났다. 후회한 적 없다.

셋째, 이런 부류들은 의외로 자신만만한데 그것이 신앙과 믿음에 근거한 게 아니라 어이없게도 자신의 신념, 다시 말해 그 공동체 내에서 자신의 입지 같은 것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이들은 고민거리(?)를 말할 때에도 자랑을 일삼을 정도로 식상한 대화에 능통한데, 말도 아주 잘하고 거침이 없다. 미리 대사를 읊듯 매번 나누는 말들이 비슷하다. 비딱한 나는 이를 생각이 없이 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여기서 내가 한 가지 식상한 멘트를 알려줄까? 이 말을 하면 교회나 더 작은 공동체 내에서는 다들 좋아할 것이다. “일에 치이고 가정 일에 치이고 하다 보니 성경을 많이 못 읽었어요. 솔직히 이번 주엔 한 구절도 못 읽었어요. 큐티는 말할 것도 없고요. 영적으로 다운되어 있는 것 같아요.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야 하는데... 기도 부탁드려요.” 장담컨대 이런 말을 하면 나 같은 비딱한 놈들 빼고는 대부분 당신을 겸손하고 솔직하고 신실한 신앙인으로 여기고 마음 문을 열고 환대해 줄 것이다. 실제 삶에서의 고민은 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나 당신이 그 공동체 안에서 뭔가 직분이라든가 직책을 맡고 있다면 더욱더. 왜냐하면 대부분은 당신이 별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자신의 믿음 약함을 드러내어 고백하고 다른 게 아닌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사모한다는 당신의 말로 인해 사람들은 감동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교회 생활 오래 해본 당신은 이런 기류를 이미 파악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어디에서나 이와 비슷한 멘트들만 날리는 건 당신의 기술이 좋아서일까? 진짜로 겸손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나는 판단하지 않겠다. 하나님은 아시겠지.

넷째, 이런 부류들은 은근히 갑질하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이들은 절대 자신이 갑질한다는 말을 들으면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늘 이들은 자신을 사람들 뒤에 놓고 있다는 믿는다.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늘 먼저 말하지 않고 남들의 의견을 들어주고 가능한 따라준다는, 마치 아량이 넓은 리더인 것처럼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고 마치 순결한 희생자인 것처럼 행세하기를 좋아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스스로를 늘 피해자 입장에 둔다. 결코 가해자의 자리에 스스로를 두지 않는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강력하게 믿는다. 언제나 뒤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는 이들의 조용한 갑질을 무수히 목격했다. 이들은 앞서 말했듯 식상함의 공동체를 언제 어디서나 만들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공동체를 갇힌 우물로 만들어 버리는 데 선수다. 새로운 물이 유입되지 않고 다양성을 품을 수 없다면 그 우물은 썩기 마련이다. 그렇다. 이들은 우물을 가두고 조용히 썩게 만드는 주범이다. 모든 사람들을 평준화시켜 버린다. 다른 말은 나올 수 없도록 만든다. 이 공동체 내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 썩은 물 안에서 조용히 죽어가는 것이다. 자, 이래도 가해자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늘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걸 좋아하는 이들이 왜 이런 공동체를 좋아하고 집착하는지는 생각해 보면 이해할 만하다. 이런 거라도 없으면 이들은 어디 발 붙일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디에서나 갑질하고 싶어 허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셋이 길을 가면 그중에 하나는 스승이라고 공자가 말했던가. 이 시대엔 스승이 아니라 갑질하는 자라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 조용한 갑질. 식상한 공동체의 운명이다. 선택하라. 그 안에서 같이 영혼 없이 장단을 맞추며 썩어가던지 박차고 나오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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