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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가벼워진다는 것

가난한선비/과학자 2026. 5. 5. 10:42

가벼워진다는 것

마감이 다가오는 이런저런 글을 쓰기도 하고, 막힐 때면 옆방으로 건너가 책을 읽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바깥이 어두워져 있기도 하고, 식사시간도, 달리러 나갈 시간도 훌쩍 지나가 있다. 아무 약속 없는 텅 빈 휴일의 내 모습이다. 이런 하루를 그토록 원했지만 어딘가 허전한 기분은 혼자이면 안 되는데 혼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외로움은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도 않는 이에게도 찾아온다.

달리기 덕분에 4킬로그램을 감량했다. 몸이 가벼워진다는 건 여간 기쁜 일이 아니다. 이제 반올림하면 앞자리가 바뀌지 않는다. 이십 년 전 몸무게다.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샤워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거울 앞에 섰을 때다. 두세 달 전까지만 해도 미련한 비갯덩어리들이 배 주위에 출렁거렸다. 그것들이 상당히 많이 사라졌다. 이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기는 듯한 기분이다. 이제 벌거벗은 내 몸을 보고 혐오스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혐오가 자신감으로 바뀌는 과정을 건강하고 자연스럽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경험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특히 어떤 타고난 재능과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얻은 거라서 더욱 값진 열매인 것 같다.

한 가지 오해할까 봐 첨언하는데, 살 빠진 게 매일 달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생활습관이 바뀌어서 그렇다. 말하자면 가공육과 단순당 음식을 멀리하고 고기, 생선, 채소 위주로 식단을 꾸리는 것, 식사 후 절대 바로 앉거나 눕지 않고 30분 이상 걷거나 실내자전거를 타거나 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것, 가급적 저녁 6시 이후엔 먹지 않는 것 등을 매일 달리기와 병행한 덕에 이룰 수 있었던 결과라고 생각한다. 평균 한 달에 1킬로그램 정도 감량되는 속도라 느린 편이지만 요요가 없어 나는 아주 만족하고 있다.

내년 6월에 선임연구원 계약이 종료되면 백수가 될 테고, 그에 상응하는 직업은 한국에서는 요원하기 때문에 (한국에는 나 정도 되는 학력과 경력이면 교수 아니면 교수급에 위치하지 않으면 마땅한 직업이 없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체력이 뒷받침된다면 괜찮다고,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기에 몸을 챙기고 가꾸는 건 결국 지혜로운 결정이었다고,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고 판단하게 된다.

불확실하지만 불안하지는 않다. 이거면 됐다고 생각한다. 체력까지 겸비되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 않은가. 무슨 일을 하게 되더라도 잘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나 자신에게 생겨서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모른다. 몸이 가벼워지니 마음도 가벼워진다는 이 단순하면서도 뼈를 때리는 진리 앞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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