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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미국 대중교통 이용기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1. 28. 04:04

전철을 타고 commute 한다고 하면, 한국에선 "그래서?" 하며 당연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에선 상황이 다르다. 서울의 지하철과는 비교도 안되겠지만, 그래도 비교적 전철/지하철망이 잘 발달되어 있는 미국 대도시 (New York, Chicago, Los Angeles, DC, Boston, San Francisco 등)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물론 인디애나처럼 촌동네엔 지하철 자체가 없다) 내가 전철을 타고 매일 commute 한다고 하면 그들의 첫 반응의 대부분은 “wow” 내지는 “oh, really?” 이다 (그러나 이 둘은 모두 "Are you crazy?" 란 뜻이 내재되어 있음을 인지하라). 그만큼 미국에선 자동차로, 그것도 혼자, 출퇴근을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기본적인 문화로 깔려 있는 것이다.


단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나 근거 없는 우월감이 묻어있는 차별적인 시선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에선 안전을 극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크다. 알다시피 미국은 총기소지가 자유다. 미국에 사는 어느 지인은 직장에서 mainstream에 합류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에게 총기에 대한 지식을 넓혀서 그들에게 어필을 하면 먹힐 거라고 조언했을 정도다. 물론 총을 들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지만, 백분의 일이든, 천분의 일이든, 그 있을지도 모르는 (분명히 있긴 있다) 총기 소지자나 범죄 기록이 있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은 사실이다. 이런 희박한 가능성에 자신이 속할, 그래서 피해를 입을, 확률은 아주 적겠지만 그래도 존/재/하기는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대중교통 이용을, 이용 가능하다 하더라도, 꺼려한다.


특히 미국인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금발머리의 백인들이 자가용을 집에 놔두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동안 수백번 전철이나 버스를 타봤지만 양복 입고 넥타이를 하고 빛나는 구두를 신고 광나는 금발머리의 아저씨들은 몇 번 보지 못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한국 이민/방문자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들은 백인들로부터 무언의, 그러나 불법적이진 않은, 암묵적인 차별을 받아오며 그로부터 스트레스를 무진장 받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흠모하는 모델로 여겨지고 있는 대상이 또한 그들이기도 하다 (모야. 경외하는 거얌??). 그래서 그런지, 내 주위에 있는 한국 사람들 중엔, 그나마 LA 근처가 나의 첫 미국 거주지였던 오하이오의 클리블랜드보다 훨씬 안전하고 치안이 잘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 빼곤 아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


클리블랜드에서 살 때다. 미국에나 한국에나 아무런 경제적 배경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 3년 반은 운 좋게 3000달러로 구입한 털털대던 2003년형 혼다 시빅 한 대로 나와 내 아내가 함께 살았다. 당시는 아내가 아직 커리어에서 궤도에 오르기 전이었기 때문에 직장이 없었고, 그래서 하루 종일 아들 녀석과 함께 있어야 할 시기였다. 그러나 흐린 날이 미국에서 가장 많은 도시인 클리블랜드에서, 그것도 조그만 아파트에 갇혀 하루 종일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내와 아들은 차가 필요했다. 다행스러웠던 건 아파트에서 10분만 걸어가면 전철을 탈 수 있었다는 것이고, 불행스러웠던 건 그 노선이 클리블랜드 클리닉까지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거였다. 중간에 한 번 내려서 버스를 타야만 했다.


클리블랜드에서 버스를 한 번만이라도 타본 사람이라면, "전철이 그나마 낫다" 라고 입을 모을 것이다. 사실 나도 처음 몇 번은 버스 좌석에 앉아 있어도 엉덩이에 힘을 뺄 수가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 거의 100% 탑승객이 흑형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만 한국인이었다. 나만 아시아인이었다. 그리고 나만 흑인들의 특유한 억양의 영어를 구사하지 못했었다 ㅠㅠ.


사실 그들이 날 위협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내 안에 이미 각인된 그들의 이미지로 말미암아 나는 버스에 머무는 동안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치 공격을 해오면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려는 진지한 결단을 한 사람처럼 말이다. 그들을 제대로 직접 마주친 건 그 때가 내 인생에서 처음이었음에도 마치 나는 그들의 특성을 이미 다 파악하고 있는 사람처럼 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웃기고 부끄러운 경험이다. 내 안에 나도 모르는 차별의식이 자리잡고 있음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내 경험을 버무려 전철 이야기를 꺼낸 건, 차별의식이란 걸 말하고 싶어서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들은, 앞서 얘기했듯이, 무언의 차별을 느끼며 (그것이 언어 차이나 문화 차이라고 말하든 상관없다) 살아간다. 만성적인 이민자들의 스트레스라고 해도 틀리진 않을 거다. 그런데 이 경우, 한국 사람들은 늘 자신을 피해자의 입장에 놓고 생각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자신이 피의자에 입장에도 충분히 많이 노출되고 있으며 실제로 그 차별이란 것을 실행하는 당사자라는 건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한국 사람이 가게의 주인인 곳에서는 여러 가지 추문이 허다하다. 요점은 엄청난 차별과 박해다. 그것도 피의자 입장에서 말이다. 논리적으로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심리학적인 부분을 고려한다면 보복 심리나 상처의 표현 등으로 해석할 순 있겠지만, 지킬 박사에서 하이드로 너무나 쉽고 빠르게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물론 한국 사람 뿐만이겠는가. 모든 사람이 정도는 달라도 모두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얼마나 겉으로 드러나 보이냐는 다르겠지만, 암묵적인 차별은 인간인 이상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처럼 누구나 행하는 것 같다.


아마도 대중교통 수단을 도시에 도입 및 확장을 계획하고 예산을 집행했던 사람들은 금발머리 백인 아저씨들일 것이다. 그들은 분명 처음엔 대중교통의 필요성과 장점 등을 선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고안해 내고 선전했던 그 대중교통을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


왜 그들은 이용하지 않는 걸까? 뭐, 이유야 만들면 되는 거다. 안전이라든지 직장과 역의 거리 문제라든지 등등. 불 보듯 뻔하지만 공식적으론 숨겨진 이유는 물론 경제적 이유, 즉 돈일테다 (아니, 그렇다면 이건 사기 아니얌?? 위선자들 아니얌??).

나야 경제적 배경도 전혀 없고, 아직 포닥 나부랭이 (사실 한 단계 진급했음. 에헴ㅋㅋ) 신세라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신세에 머물러 있어서 전철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물론 자가용으로 출퇴근 정도는 할 수 있는 돈은 벌어요~), 난 덕분에 "위선자"란 호칭은 내게서 빗겨간 듯하다.


결론은 "함께"인 것 같다. 좋은 자리 꿰차고 있으면서 가난하고 헐벗고 소외되고 억눌린 자들, 억울한 자들을 위한답시고 듣기 좋은 이론이나 펼치고 있는 사람들 (위에 언급한 대중교통을 선전, 도입, 확장시킨 장본인들인 금발 백인들과 같은)에 혹시 내가 속해 있진 않을까? 기득권을 하나도 내려놓지 않고 챙길 건 다 챙기면서도, 오히려 더 돈을 벌기 위해서, 더 인기를 얻기 위해서, 입에 발린 달콤한 말만 해대고 있는 사람 중에 혹시 내가 있진 않을까? 차별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고 불평해 대지만, 정작 나도 마찬가지로 내 주위 사람들을 차별하고 있진 않을까?


물론 "함께"라는 행동은 당장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homeless들과 같이 살라는 의미는 아닐 게다. 만약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을 십분 활용하여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사용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위해 사용하는 거다. 낮에는 한참 정의와 사랑을 부르짖어 놓고 밤에 뒤풀이 하면서 가게 종업원을 개처럼 다루거나 무시, 폭언하는 인간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실천하는 거다. 내가 받은 복은 남에게 전달하고 증폭하기 위해서라는 걸 인지하고 실천하는 거다. 그렇다. 복음을 실천하는 거다. 하나님나라다. 하나님의 선교는 이렇게 실생활과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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