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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포항의 기억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3. 28. 05:31

복학 후 제대로 공부해 봐야겠다는 결심이 다행히 내게도 찾아왔었다. 때는 3학년 2학기, 2001년도 가을학기였다. 면역학 수업이었다. 생물학 분야를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생물학은 일반생물학을 배운 후 생화학,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 유전학 정도만 배운다면, 어느 정도 그 필드에서 진행되는 생각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된다. 논문을 읽기 시작해도 되는 시기다. 복학 후 첫 학기, 면역학이란 과목을 듣게 되었는데, 복학 후 학업에 대한 나의 강렬한 의지와 맞물려서인지 난 금새 면역학에 매료되었다.


생화학, 분자생물학, 세포생물학으로 일관되던 그 흐름과는 달랐다. 뭔가 새로운 느낌이었다. 참신했다. 그래서 좋았다. 첨으로 교과서나 참고도서가 아닌 논문을 읽기 시작했다. 여러모로 면역학이란 과목은 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던 것 같다.


무슨 일인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교수님께서 한 두번 안나오신 적이 있었다. 조교가 대신 들어와서 수업을 진행했는데, 그 조교는 바로 구본경 (Bon-Kyoung Koo)이었다.


본경이와는 인연이 깊다. 1996년 3월. 서울 성북동 촌놈 본경이와 부산 촌놈인 내가 포항이란 낯선 깡촌에 와서 쪼그만 기숙사 한 방을 같이 쓰게 되며 인연이 시작되었다. 본경이는 2층 침대에서 위쪽, 난 아래쪽을 이용했다. 19동 205호 닭장에서 허구한 날 치킨을 먹으며 (증인: Jiho Park, 김준현, Min Chul Kwon, 김준호, 증인들 한마디씩 하시오!) 1년을 함께 했다. 우린 함께 음악을 많이 들었다. 내가 David Foster의 팝발라드와 Miles Davis의 블루재즈 쪽을 선호했다면, 본경이는 영화 Mission의 Gabriel’s oboe의 오보에 소리와 Dave Koz의 색소폰 소리를 좋아했다 (실제 본경이는 트럼펫을 불 줄 안다. 아. 이 얘기를 빠뜨릴 수 없쥐. 1학년 축제 때 공연을 했는데, 본경이가 트럼펫 주자로 나온 적이 있다. 난 그 삑싸리를 잊을 수 없다. 너무나 강렬했던 그 기억! ㅋㅋㅋ 기억나냐? 본경? 오늘 내가 너무 탑시크릿을 남발하는건가? ㅎㅎ, 음. 이 사건은 Incheol Ryu 소환하면 리얼하겠군 ㅋㅋ 한마디 해줘 인철~). 우린 CD를 모으고 주구장창 들었다. 그때 유행이었던 삐삐의 시그널 음악에 넣을 곡을 선곡한다고 애쓰기도 했었다. 때론 부산이나 대구로 가는 출장 미팅에 함께 하기도 했다. 통집에서 맥주와 안주를 허벌나게 먹고 새벽까지 효자동 시장에 위치한 노래방에서 유행가를 멋적게 부르기도 했다. 본경이의 첫사랑 (이름이 기억이 안나네. 뭔가 내가 아는 이름이랑 비슷했던 건 기억이 나는데) 이야기도 들었고, 내가 본경이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줬던 기억이 난다. 나름 난 이벤트왕이었다. ㅋㅋ


본경이는 미련해 보이는 외모에도 머리가 비상했다. 함께 놀며 내일 시험 X 됐다면서 째자, 째자 하며 그 전날 밤도 야식과 음악으로 점철했었는데, 가끔 새벽에 쉬가 마려워 눈을 뜨면 본경이는 시험 치기 한 두 시간 전에 혼자 일어나 책을 보고 있었다. 아. 그때 느꼈던 그 배신감! 물론 시험 성적은 본경이가 거의 항상 좋았다. 음, 근데 뭐랄까. 본경이는 교과서만 디립다 파서 시험 점수 잘 받는 스타일의 범생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건 나랑 비슷했는데 (아마 이런 삐딱함이 없었다면 포항까지 왔겠는가!), 마지막 한 끝이 항상 나보다 한 발 앞서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본경이는 어느새 황새가 되어 뱁새인 난 찢어질 가랑이 때문에 그저 이렇게 있다. ㅜㅜ). 그때 난 일찌감치 눈치챘다. 보통 놈이 아니군.


조교로 들어온 본경이는 부끄러워하며 수업을 미적미적 진행했는데, 웬걸. 너무 잘 하는 거였다. 질문에도 척척 대답을 했고, 뭔가 지식의 뒤에 흐르는 원리를 꿰차고 있는 것 같았다. 방황하며 군대까지 다녀온 나에게 느껴진 본경이는 이미 스승이었다.


돌발 퀴즈 시간이었다. 허나 갑작스러움은 늘 즐기며 준비되어 있는 자를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시키지도 않은 논문까지 읽어가며 연신 면역학에 대한 재미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돌발 퀴즈 시간이라고 하자 난 왠지 모를 우월감의 웃음이 나왔다 (그 느낌 아는가? ㅋㅋ). 당삼 결과는 1등. 그런데 문제는 점수였다. 10점 만점이었던 퀴즈였는데, 내 점수를 보니 12점이지 않는가! 논문까지 읽으며 내 생각을 썼던 게 가산점이 붙었던 것이다. 기분이 좋았다. 아. 공부는 이렇게 하는구나 싶었다.


그 가산점 덕분인지 교수님께서 그 수업 마치고 나를 부르셨다. 연구참여를 자기 랩에서 할 생각이 없냐고 물으셨다. 그렇잖아도 학부생의 연구참여가 전공필수로 되어 있어서 어디를 갈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참 잘됐다 싶었다. 흔쾌히 알겠다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물론 그 랩은 본경이가 있는 랩이었다.


동기인 본경이, 벌써 저 앞에 있는 본경이가 날 가르치기 시작했다. 머리는 둔했지만 다행히 난 손이 좋았다. 본경이가 실패했던 실험도 내 손에선 되어졌다. 본경이는 그 맛을 알았는지, 나에게 아주 디테일하게 실험 과정을 설명하고 지시했고, 난 그걸 수행했다. 결과는 척척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 이 과정은 학부 4학년 말까지 진행이 되었고, 난 그 랩에서 시간상 처음으로 knockout mouse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학부 졸업에서도 단 한명에게 주어지는 최우수 논문상을 먹었다. 그러나 모든 브레인은 본경이었다. 난 그저 손만 움직여 줬을 뿐이다. 본경이가 석사 때 고전했으나 실패했던 knockout mouse 만들기가 운좋게 내 손에서 성공이 된 것이었다. 본경이도 기뻤으리라 믿는다. 물론 상은 내가 받았지만 말이다.ㅎㅎ


나의 졸업 논문의 감사의 글에서도 밝혔고, 내 첫 논문인 Blood 논문 덕에 브릭에 썼던 인터뷰 내용에도 밝혔지만, 난 포항에서 박사과정을 6년동안 하면서 가장 큰 열매는 본경이로부터 직접 배웠던 게 아닌가 한다. 지금이야 한스 클레버 랩에서 살아남았고 인정받았으며 영국 캠브리지에서 그룹리더로 일하고 있어서 누구나 본경이를 대단하고 존경하는 과학자로 인정하겠지만, 그때 그 포항 쪼그만 랩 귀퉁이에 앉아 사이언스를 얘기하며 밤을 새며 함께 실험을 하던 본경이를 큰 인물로 점찍은 사람중에 내가 하나라는 사실은 내가 생각해도 내가 참 대견하다. 미래를 보는 눈을 가졌나? ㅋㅋ 아… 그립지 않냐 본경? 사이언스와 배드민턴과 통집!??


면역학에 관련된 knockout mouse였기 때문에 난 너무 신났었다. 곧장 실험에 들어갔다. 예비실험 데이터에서 본경이는 내 손으로 만들어진 결과에 경탄을 금하지 못했다. 그렇다. 난 기계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mouse 의 phenotype이 없다는 것도 내 그 좋은 손으로 밝혀버렸다는 데에 있었다. In vitro와 In vivo와의 괴리를 난 그때 내 손으로 만든 knockout mouse를 통해 실감한다.


이후 Breast cancer 쪽에 연구를 하게 됐다. 교수님께서 하셨던 단백질 중에 Mammary development에 관계된 게 있었기 때문이다. 본경이가 선택했던 유전자의 conditional knockout mouse도 이미 만들어졌기 때문에 (내가 만든 knockout mouse를 기점으로 줄줄이 사탕으로 랩 구성원 모두는 각자 마우스 만들기에 성공하게 된다), 난 그 유전자가 mammary development와 나아가 breast cancer와의 연관성을 조사해 보기로 했던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운명적인 순간이 곧 찾아온다.


Breast cancer를 연구하려면 당연히 female을 관찰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male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가는 것이었다. 피부도 마치 psoriasis 와 같은 표현형을 보이면서 말이다. 물론 male만 그런게 아니었다. 성별이 상관이 없었다. 표현형이 나온 마우스들의 꼬리로부터 PCR genotyping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 Cre+ floxed 마우스들이 아닌가! 확실했다. 그건 유전자의 knockout으로 인한 phenotype이었던 것이다!


교수님께 보고를 드렸다. 교수님께 보고를 드릴 땐 감정만 가지고 하면 안된다. 근거와 논리가 뚜렷해야 한다. 난 이미 그것이 낙아웃으로 인한 표현형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마우스를 들고 오라고 하셨다. 교수님은 수술 준비를 하라고 하시고 장갑을 찾으셨다. 마우스를 가지고 왔다. 아주 노련한 손놀림으로 교수님은 마우스 배를 가르셨다. 그 옆에는 나도 있었고 본경이도 있었다. 난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내장 부피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spleen과 liver, 그리고 lymph nodes! 지금은 하도 많이 봐서 별 감정이 없지만, 그땐 완죤 놀라움 그 자체였다. 역겹다는 생각이 들 겨를이 없었다. 경이로웠다. 그리고 대박이 보였다. 교수님은 점프를 하셨다. 내가 본 교수님의 두 번째 점프였다 (첫번째 점프는 내가 첨 만든 knockout mouse의 표현형이 mixed background에 의한 것인지 모르고 흥분하셨을 때다).


면역학으로 시작했으나 찬물을 먹고, 그래서 breast cancer 쪽으로 전향했으나 결국 다시 면역학의 사촌뻘 되는hematology 쪽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 이후 그 마우스 분석을 통해 그 마우스의 병명이 Myeloproliferative disease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놀라운 건 그 disease의 발생 메커니즘이었다. Hematopoietic cell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microenvironment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대발견은 교수님의 욕심으로 인해 가장 먼저 저널에 발표할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 몇개월만 빨랐어도 Cell이었는데… Blood로 만족해야 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참 많이 아쉽다.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철학도 그때 배우게 된다.


어떤 박사님 (Ji-Hyun Lee)이 본경이 랩으로 포닥을 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갑자기 옛 생각이 들어 끄적여 봤다. 그립고 재밌네. 그 시절. 아.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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