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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편안함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3. 28. 05:30

오토바이를 타고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길가에 늘어선 햇살과 초록의 그라데이션을 만끽하던 대학시절이 문득 그립다. 머리 아픈 전공과목 숙제를 끝내고, 듣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대나무숲 소리를 들으며 해방감에 조용히 기숙사방에 홀로 앉아 생각하며 글을 쓰던 그때가 그립다. 그때는 맘만 먹으면 햇살을 한줌 주워담을 수도 있을 것 같았고 숲의 새소리도 받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나의 감상적인 기억은 공교롭게도 언제나 슬픔과 함께 끝이 난다. 그 시절의 끝에는 6년을 넘게 사귀었고 결혼 얘기까지 했었던 옛 여자친구와의 이별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늘 마음이 불안했었다. 놓치지 않으려는 처절함의 냄새가 언제나 내 몸엔 진득하게 배여 있었다. 그땐 몰랐다. 젊음이 함께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딴엔 고달픈 인생사를 떠맡고 있다 생각했었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면 대부분의 것들이 부끄러워지듯, 그때의 고민과 나의 불굴의 의지조차 이제 와선 우스울 뿐이다.


"영웅이 넌 너무 교회를 열심히 믿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그녀의 말이다. 문제는 엉뚱한 데 있었다. 나의 모든 고민들이 허망했음을 깨닫고 털썩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었다. 난 내가 그녀에게 해왔던 행동들에 초점을 맞추어 나름 반성하고 있었는데, 폭탄은 늘 그렇듯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터졌다. 그리고 난 그 충격에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아스팔트 바닥위로 던져 버렸다.


기숙사 내리막길, 삼거리가 형성되는 그 지점. 딱딱하고 거무튀튀한 아스팔트 바닥. 검은 내장을 드러낸 하얀색 커플 폴더폰의 최후. 내 아련한 기억의 끝이다.


그러나 끝은 시작이었다. 그 끝은 지금의 내 아내를 만나게 된 물꼬를 틀었다. 헤어진 그녀와는 달리 아내의 키는 아담 사이즈였고 머리는 노랑색 사자 머리 (일명 이의정 머리)였다. 전국 교회 수련회에서 만난 아내와는 첫 만남의 기억은 편안함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내 같았다. 첨 볼 때부터. 외모는 내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으나 (헤어진 여자친구는 이상형과 아주 가까웠다. 키 크고 긴 생머리에 너무 튀지 않게 조심스럽게 예쁜 스타일?), 내 마음과 몸은 나의 머리를 배신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 과거의 몇몇 안 되는 중추적인 코어 메모리들은 내 바램과는 거의 상관이 없었던 것 같다. 환경에 영향을 받는 인간의 한계일까. 내 의지의 나약함일까. 아니면, 나는 언제나 머리와 마음이 따로 노는 전형적인 이론가인가. 그 어떤 것도 아닐 거다. 역사적 사건의 배후에 늘 내가 중심에 없었다는 것은 그땐 굉장히 좌절스럽고 자책까지 할 정도의 이유가 되었지만, 이젠 그게 오히려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저 나는 날 아직도 잘 모르고 있다는 게 이젠 부끄럽지도 않고 재미있다. 스스로 독립적인 개체가 되어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삶을 일구어 나가는 외로움을 떠맡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까. 난 그저 지금이 좋다. 편하다. 내 아내를 만났을 때처럼. 일상을 즐긴다. 관찰자가 되어본다. 난 이렇게 늙어간다. 그러나 왠지 좀 더 지혜로워지는 느낌이다. 얼굴엔 웃음이 머문다. 이삼십대에 그렇게나 갖고 싶었던 여유가 마흔이 되니 이제서야 얼굴에 묻어나는 것 같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삶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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