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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신비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3. 28. 05:32

색안경을 꼈을 때는 상대를 제대로 보기 어려운 법이다. 색안경이 내면세계의 표출이라고 한다면, 나의 내면과 상대의 내면이 맞닥뜨리는 시간, 당신과 내가 만나는 시간, 그건 바로 우리의 일상을 이루는 인간관계다. 인간관계가 다채로운 이유는 각자가 낀 색안경의 색이 가지각색이라 그런 건지도 모른다. 사실 우린 우리가 색안경을 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인간관계에 익숙해져 버리지 않았는가. 혹시 색안경은 태어날 때부터 우리 눈에 부착되어 우리와 한 몸이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행여나 자기는 안경을 끼지 않았다고 한들 모두가 안경을 낀 세상에서 그 사람은 보이지 않는 투명 안경을 낀 것일지 어떻게 증명할 텐가. 재미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우리 인간은 자신에게도 상대에게도 이해하기 힘든 신비 그 자체다.


평생을 걸쳐 연구를 해도 답을 알지 못할 신비로운 자신과 상대를 연구실이 아닌 일상에서 접한다는 건,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다. 어쩌면 심리학자나 철학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인간의 속성이나 본성을 연구한 결과가 아니라 일상의 신비를 관찰하고 보고한 것에 지나지 않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연구실이 되어버린 일상, 일상이 되어버린 연구실, 이건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우리를 보는지 우리가 원숭이를 구경하는 건지 모르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연구실'이라 칭한 곳에서는 뭘 '연구'하는 것일까 자못 궁금해진다.


일상은 신비다. 우리 인간이 일상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며, 우리 인간이 신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확신을 가지는 사람, 확신을 가졌었으나 지금은 잃어버린 사람, 우유부단한 사람, 우유부단했으나 지금은 확신에 차있는 사람. 재미있지 않은가. 빛의 스펙트럼만 다채로워 아름다운 게 아니다. 우리 인간이 더욱 그렇다.


난 오늘도 당신을 만난다. 내일은 또 다른 당신을 만날 테고, 다음 날은 며칠 전에 만났던 당신을 또 만날 수도 있다. 또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더욱 신비로워진 당신을. 난 만나는 거다. 어떤가. 인생, 살아볼 만하지 않은가. 기대가 다시 생기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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