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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르를 읽고 있다. 나로서는 제대로 된 철학책을 읽는 첫 경험이다. 철학 자체에 관심이 있기 보단, 신학과의 연결점과 그들의 사유 방법에 대해 궁금했기 때문에 키에르케고르를 나의 철학 입문으로 선택했다. 그런데 읽어가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 놀란 사실이 있다. 그건, 예전같았으면 읽었던 부분을 또 읽고, 읽어도 이해못했을 텍스트를, 무려 꽤 빠른 속도와 집중력과 함께 나름 이해하며 또 재미를 느끼며 읽어내려가고 있는 나를 목격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1년간 수십권의 책을 읽어나가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독서의 근육이 붙은 걸까. 단, 한가지 아쉬운 건 요즘 들어 글자가 조금씩 흐릿하게 보인다는 거다 (임택규 선생님께선 노안의 시작이라 하셨다. ㅜㅜ). 독서도 독서지만, 눈 관리를 더불어 체력도 잘 관리해야 쓰겄다.
다음은 오늘 읽은 본문 중에서 맘에 와닿고 반헤겔주의자였던 키에르케고르를 단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참고로 난 새물결플러스에서 출판한 인문학 시리즈 중, 김종두 저,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사상과 현대인의 자아 이해”란 책을 읽고 있다.
| 우리는 지금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나 참된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자기 상실이 가장 큰 피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세상에서 아주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다. 다른 어떤 것의 상실도 이만큼 조용히 이루어질 수는 없다. 다른 어느 것의 상실, 예컨데 한쪽 팔, 한쪽 다리, 5달러, 한 아내 등의 상실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반드시 관심을 기울인다.” “군중들에게 에워싸이고 세속적인 일들에 심취해 세상의 생활방식에 대해서 더욱더 눈이 밝아진 비본래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은 자신을 잊고 신이 지어주신 자신의 이름도 잊고 살아가고 있으며 자신을 신뢰하려 하지 않고 자신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부담이 많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들은 타인들과 똑같이 되는 것, 즉 하나의 복제물, 하나의 숫자, 하나의 군중인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쉽고 더 안전하다고 간주하고 있다.
개인이 개인으로 올바로 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존재의 원천이며 원형인 신 앞에서 바로 서야만 한다. 그와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한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것은 사실 오로지 신과의 관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으로 “인간은 진정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섬과 더불어 필연적으로 신에게로 돌아서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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