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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다만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잠시 갸우뚱했지만, 그 말은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그건 마치 내가 지금까지 바래왔고 또 추구해왔던 것들이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들이었다고 단번에 정리해 버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패를 합리화하여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는 하나의 루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탈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최선을 다했으면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위로가 되는 동시에 마음속 한 켠에서 여전히 고개를 뻣뻣하게 쳐들고 있는 삐딱함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그 삐딱함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본적은 있는가. 그저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자기 의일 것 같은가? 자존심 비슷한?
삐딱한 김에 조금 더 나가보면, 그것의 본질은 어쩌면 양심의 반사작용일 수도 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최고의 자리에 서지 못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미련이라 말할 수도 있고, 최고가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고 치자는 합리화 작업에서 남아있는 약간의 양심에 거리끼는 불의함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가지 질문이 생긴다. "과연 나는 최선을 다했는가?"
정말 최선을 다했으나 최고가 되지 못했다면, 최선을 다했으면 됐다는 말에, 비록 아쉬움을 송두리째 제거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전심으로 수긍이 갈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고 다음 번의 경주 준비에 긍정적으로 임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실패를 전적으로 겸허히 받아들이고 뒤끝 없이 뒤풀이나 하면서 상황을 교과서에 나오는 철수나 영희처럼 아주 바람직하게 종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교과서가 아니지 않은가. 실패에는 언제나 뒤끝이 남는 법이다. 철수와 영희는 현실에서의 인간의 대표가 아니다. 실패자의 마음에는 공허함과 아쉬움뿐 아니라 더욱 복잡한 감정인 자괴감과 자존감 상실로 가득 차게 된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는 도중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바이프로덕트인 셈이다. 철수와 영희는 분명히 아주 일차원적인 감정 체계를 가진 '교과서'적인 선형 인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도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선형이 아니다. 복잡한 미분계를 가진 곡선, 그것도 어떤 하나의 방정식으로 표현해 낼 수 없는, 그래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다. 늘 자아에 대해 고민하지만, 공들였던 경주에서 실패했을 경우 그 고민이 더욱 심각해지는 건 당연한 것이다. 우린 철수와 영희가 아닌 '인간'이다.
다시 동일한 질문에 봉착한다.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나는 최선을 다했는가?" 이는 이미 끝난 경주에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그리고 최선을 다했던지 그렇지 않았던지 누가 객관적으로 검증해 줄 것이며, 설사 누군가가 그렇게 해준다고 하더라도 나 스스로가 그것을 100% 수긍할 수 있는지는 결국 주관적인 판단으로 결정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이 예스나 노라고 난다 할지라도 그 감정의 소용돌이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답을 내도 또 질문하게 되고, 또 고민하고 또 답을 낸다. 제대로 실패해 봤다면, 그 무한루프 속으로 빠져드는 건 디폴트다.
철수와 영희가 아닌 '인간'인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탈출구는, 그러므로 최선을 다했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동일한 질문과 답을 하는 무한반복으로부터 어떻게 빠져나오는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반성하고 다음을 대비하는 과정보단 복잡한 이성과 감정의 구렁텅이로부터 탈출하고픈 이기적인 동물인 것이다. 그리 철학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어떻게 보면 또 그리 복잡하지도 않은 존재다.
여기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리 인간은 그러한 '무식한' 무한루프 속으로 빠져보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이고 실패한 다른 사람과 그 사람의 상황을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모든 과정의 궁극적인 방향은 난 '공감'을 향한다고, 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실패, 그로 인한 상실감과 슬픔과 고민, 또 그로부터의 탈출, 이 모든 것의 목적지는 '공감'일 것이다. 상황은 동일할 수 없는 시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우리 인간은 비슷한 프로세스를 거친다. 자극의 실체는 다를 수 있어도 그 자극이 일으키는 반응의 프로세스는 비슷하다. 그리고 그 프로세스의 최종 목적지나 최종 결과물은 '공감'인 것이다.
실패 후 공감능력을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진짜 실패라고 본다. 반대로 실패 후 공감능력을 얻었다면 그것은 실패라고 더 이상 명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합리화를 충분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어쩌면 성공보단 실패가 우리 이기적인 인간에겐 더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성공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만 더욱 보이는 법이고, 실패 후에는 타인을 공감할 수 있는 기회라도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평범한 서민들에게는 실패가 성공보다 훨씬 더 많은 빈도로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공감능력이 거의 바닥이었던 나에겐 성공보단 실패가 더 소중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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