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in monologue

삼진 아웃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8. 4. 02:35

겨우 삼진 아웃일 뿐이라고 했다. 아, 난 그가 좋았다. 긍정적이어서가 아니라, 현실 너머에 있는 큰 그림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눈은 깊었다.


때론 의도하지 않은 안좋은 일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그렇게 생겨나는 것까지는 괜찮다손 치더라도, 그 과정과 결과를 온전히 목도하며 온몸으로 참여해야만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건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좋다 안좋다를 판단하는 건 다분히 주관적이지 않냐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그런 지적이 공허한 이유는 소위 "안좋은" 일을 연속적으로, 그리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도 꿋꿋하게 견뎌내는 소중한 사람들의 눈물 때문이다. 조금만 눈을 들어 주위를 살펴보면,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공감이나 이해를 할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엔 차고 넘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큰소리 치던 어린 아이도 어느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으며, 이보다 더한 어려움은 없을 거라며 자타가 공인하던 상황이 끝나자마자 회복되기는 커녕 완전한 파멸로 치닫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인생을 많이 살았다고 해서 꼭 지혜로워진다는 법은 없지만, 살아보지 않으면 결코 공감이나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상의 단어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소망이다. 소망은 환난과 역경 가운데 피어나는 꽃이다. 그런 어두운 상황이 없다면 그 꽃은 신호를 상실하여 꽃은 물론이고 그 뒤에 맺힐 열매조차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그런 나무는 죽은 거나 다름이 없다. 아무런 풍파를 맞이하지 않았다고 마냥 좋아한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사실상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삼진 아웃은 원 아웃일 뿐이다. 아직 스리 아웃도 아니며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다. 이기려고 경기를 하는 건 맞지만, 이기는 것이 경기의 모든 의미는 아니다. 이기는 것은 경기의 여러 의미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야 그때 그가 말한 "겨우"라는 단어를 비로소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깊은 눈으로 날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던 그는 결코 체념한 것이 아니었다. 난 초월의 모습을 목격했던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가 보고싶다.

'in monologu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표현하지 않는 비겁함에 대하여  (0) 2017.08.04
단상  (0) 2017.08.04
  (0) 2017.08.04
졸업  (0) 2017.08.04
실패자의 교만을 엿보다.  (0) 2017.08.04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