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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정신병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8. 4. 02:37

우린 때론 정신병에 걸린 사람을 너무나도 쉽게 혐오하며 미치광이로 치부해 버린다.


클리블랜드에서 포닥 생활을 할 때였다. 조울증 진단을 공식적으로 받고 약을 먹는 사람 밑에서 3년 남짓을 보냈다. 이미 "가치관이 바뀔 때까지"란 제목으로 연재한 글에서 언급했듯이 그녀의 병은 그녀가 가진 파워를 악용하는 역할을 했고, 나를 비롯한 실험실 가족들은 온전히 그 결과를 받아내야 했다. 다행히 걱정했던 큰 사건은 터지지 않았기에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 시절을 좋은 경험으로 여기자고 스스로에게 제안할 수도 있는 여유도 갖게 되었지만, 내가 직접 겪은 몇몇 에피소드를 떠올리면 어김없이 우울함과 함께 신세타령하고 싶은 모드로 전환되는 나를 발견한다.


항상 내 입장에서만, 그러니까 정신병에 걸려서 아픈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입장에서만 나는 여태껏 그 정신병을 생각했었다. 한번도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정신병자는 역지사지의 논리조차 적용할 수 없거나 적용해선 안된다는,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순전한 이기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기내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가족이 그런 병에 걸렸다면, 만약 내가 소중히 여기는 지인이 그런 병으로 아파한다면, 과연 그래도 그 이기적인 관점을 고수할 수 있을까?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관계에서 나는 이미 그 환자를 이해하며 진심으로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데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하는 가족 관계였다면 어땠을까? 만약 거기서도 실패한다면 그 실패의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며 난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걸까? 피고용자는 고용자와의 계약을 끝내고 떠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지만, 가족이라면 그럴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보스턴을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오는 도중에 환자인 듯한 어떤 사람과 그와 함께 하고 있는 가족을 봤다. 클리블랜드에서 겪었던 일이 자연스레 떠올랐는데, 그 둘이 묘하게 겹치면서도 충분히 다른 면이 아주 크게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조금 더 생각하며 하나님나라의 관점을 적용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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