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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과 하는 일을 초면에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 보통 사람들은 내가 책상 앞에 앉아서 컴퓨터 자판이나 두드리며 서류 작성하고 상관에게 보고하는 화이트 칼라라고 여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난 허구한 날 손에 피를 묻히며 하루의 절반은 서서 보내는 철저한 블루 칼라다.
오늘도 20마리 마우스로부터 피를 100 마이크로 리터씩 뽑았다. 이제 실험실로 가서 그 피가 어떤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조사할 것이다. 대략 3시간 정도 걸릴 예정이다. 그러고 나면 벌써 하루의 절반 이상이 뚝딱 지나간다. 그렇다고 남은 시간에 내가 하고 싶고 요즘 좋아하는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할 수 있느냐? 아니다. 오늘 도출된 데이터를 모으고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동안 모아왔던 데이터들과 비교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불쑥불쑥 찾아오는 보스에게 결과를 보고하고 디스커션도 해야 한다.
또한 보통 실험이 두 세 개가 한꺼번에 진행되기 때문에 다른 실험도 중간 중간 해줘야만 한다.
창피한 일일수도 있겠지만, 난 공식적으로는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포닥 9년차라, 왠만한 실험은 몸에 익었기에 이런 것들이 별로 스트레스로는 작용하지 않지만, 하루가 이런 식으로 후루룩 국수 마시듯 흘러가는 걸 지켜보고 있노라면 참 인생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게 된다.
짬짬이 하는 페이스북에서 좋은 글들을 읽는 건 하나의 즐거움이긴 하지만, 요즘 들어선 이것도 무슨 의미인가 싶다. 적당한 가면을 쓰고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을 서로 보여주며, 겸손과 교만의 어중간한 레벨에서 서로 자랑질을 하여 좋아요를 주고받으며 유지하는 인간관계.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싶다 (물론 페북 덕분에 만남의 축복도 여러 번 받았지만). 뭐 그렇다고해서 내가 인간관계에서 무슨 신비한 교감을 유치하게 기대하는 것도 아닌데... 아, 그냥 동굴로 들어갈 때가 됐나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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