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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의 태양이 만들어 주는 화려한 명암의 옷을 입고 늘 위용을 자랑하던 저 산도 오늘은 짙은 회색빛의 안개에 잠겨 있다.
나도 언젠가 저런 산 정상에서 안개에 흠뻑 젖어본 적이 있다. 중학생 시절 어느 수련회였다. 습기가 진득하게 배인 배낭을 짊어지고 두어 시간 산 능선을 따라 행군을 했던 기억이 난다. 온통 뿌연 대기 속에서 금새라도 콧잔등에 물기가 맺힐 것만 같은 행군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숙소도 안개에 잔뜩 잠겨 있었다. 안개가 우리보다 빨랐던 것이다. 그 날은 안팎으로 습기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땀과 안개에 젖은 옷은 관물대에 걸어두고, 끈적한 몸은 물로 씻어내고, 습기 먹은 수건으로 몸을 닦고, 습기 먹은 새 옷으로 갈아 입었다. 그리고 숙소에서 나는 오래된 곰팡이 냄새를 맡으며 잠이 들었다.
소리없이 전체를 감싸안는 안개의 속도를 온몸으로 체감했던 그 날의 기억은 오늘 이렇게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뜬금없이 되살아났다. 먼 기억의 저장고에 정리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던 것들이 오늘의 안개가 소환해 낸 것이다. 그 때의 냄새와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오늘 출근길은 마치 안개 자욱한 산에서 내려온 기분이다. 찝찝하다. 안개처럼 찝찝함의 속도 역시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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