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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하나님나라, 그 현실적인.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11. 8. 02:51

스프링복의 비극은 매번 들어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무리를 지어다니는 스프링복은 신선한 풀을 먼저 뜯어 먹기 위하여 달리기 시작한다. 경쟁이다. 안간힘을 쓰지 않으면 풀을 먹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절력 질주를 하다가 그들은 그만 벼랑 끝에서 떨어져 몰살을 맞이한다. 그들의 빠른 속도는 관성의 법칙으로 하여금 제동 능력조차 거뜬히 이겨버리게 만든 것이다.


선두에서 잠깐 승리의 쾌감을 맛보며 달리던 놈들이나, 그 뒤를 따라 똥줄 빠지듯 달리던 놈들이나, 벼랑을 만났을 때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몰살 전 그들은 이미 목적을 상실했으리라 생각한다. 자신들이 왜 뛰고 있는지, 왜 더 빨리 뛰어야만 하는 것인지 잊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바로 경쟁 사회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는 예화가 아닐까? 목적상실, 기진맥진, 그리고 죽음.


뼈 빠지게 일해봤자, 노오오력을 기울여봤자, 그리고 선두 그룹에 속해봤자, 스프링복의 종착역은 떼죽음이었다. 벼랑 끝이란 사실을 먼저 발견한 놈들도, 그들 때문에 패배감을 맛보며 눈에 불을 켜고 쫓아오는 놈들로 인하여 등 떠밀려 죽는다.


승자독식 구조가 실패하는 이유는 그들의 속도다. 그리고 그들을 좇아 승자가 되고 싶어 하는, 본질상 카피들의 존재다. 쾌감은 잠시일 뿐, 복제하는 카피들의 기술과 속도는 진화하기 마련이며, 그에 따라 위기를 느낀 선두들은 그들이 승리하여 얻은 산물을, 뒤따라 잡히지 않기 위하여, 모두 투자하게 된다. 목적은 기어이 잊혀지게 된다. 처음엔 서로 죽고 죽이는 정도로 끝이 나겠지만, 그것은 결국 함께 죽는 것으로, 떼죽음, 몰살로 수렴된다. 경쟁 사회의 진화의 종점은 파멸인 것이다.


이런 현실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의 입장을 생각해 본다. 스프링복의 무리에 들어가 노오오력하다 죽을 것인가? 아니면 모두 너무 빨리 뛰지 말자고, 그래서 제동 거리를 확보하자고 시스템을 완화하는데 주력할 것인가? 그게 아니면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꿔서, 먼저 풀을 발견해도 모두가 굶어죽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풀을 나누자고 할 것인가? 나눈다면 그것을 차등적으로 나눌 것인가, 균등하게 나눌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무리 생활을 포기하고 각개전투로 전향할 것인가?


이것은 다름 아닌,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 빛과 소금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매일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일 것이다.알아채지 못하고 반복된 일상이 만들어 낸 관성에 떠밀려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허다하겠지만 (이렇게 정체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정체성을 안다 하더라도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해서는 늘 도전의 연속인 법이다. 복음의 공공성을 다시 생각한다. 사적 영역에 갇힌 복음의 그 거룩함은 이미 빛이 바랬다. 우린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각자의 다양한 삶의 컨텍스트에서 어떻게 하나님나라를 구현하며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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