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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aith

두렵고 떨림, 거룩함의 이면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11. 4. 07:28

| 권연경 교수 저, ‘행위 없는 구원?’ 을 읽고 묵상하다가 써내려간 글. 칭의의 현재성과 미래성 사이에서 체념과 초월의 의미를 맘대로 연결시킴. 체념이 아닌 진정한 초월은 칭의의 현재성보단 미래소망적인 의미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


정착은 인간에게 안정감을 선사해 주었지만, 그것이 장기화 될 때면 인간 안에 내재된 자기중심성은 어김없이 인간의 껍데기를 뚫고나와 빛을 발했다. 불안정함으로부터의 탈출로 인한 감사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고, 유일하게 남은 건 안정감을 넘어서 무한한 플러스 알파를 더 쟁취하고자 남과 경쟁하는 것이었다. 안정감은 결국 자신이 신뢰할만한 세력이라는 의미만으로 축소되었으며, 마침내 남을 죽이는 도구가 되었다.


그래서 인간이 안정감을 얻고자 본능적으로 쉬지 않고 애쓰는 이유도 어쩌면 한낱 이기적인 욕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의 왕국을 건설하고픈 욕망. 교만의 실천. 원죄의 실현이다.


다만 대부분의 우리들은 생각없이 미시적인 단위에 머물러 있고, 사소한 것에서 눈치보며 살고 있으며, 남과 비교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느라,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반대로, 떠날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안함을 느낀다. 미래를 걱정한다.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되며, 비로소 현실적인 계산을 하게 된다. 플러스 알파보단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점검하게 된다. 떠남은 안정감과의 이별인 셈이다.


그래서 불안정함은 그나마 인간이 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물론 불안정함의 장기화 역시 ‘실패자의 교만’과도 같은 역설적인 돌연변이 형질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대충 입에 풀칠할 수 있는 대부분의 우리들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떠남에서 반성의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일부러 떠남의 기회를 지속해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그네 인생이지만, 나그네임을 일부러 과장해서 연출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서, 떠날 때 떠나는 것만 해도 우리에겐 이미 충분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나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떠날 때를 분별할 줄 알며 그것을 좋은 기회로 삼을 줄 안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얘기다.


떠날 때를 안다는 것. 힘든 일이다. 어려운 숙제다. 언제나 떠남이 내 뜻인지 내 뜻이 아닌지에 대한 질문에 불분명한 답을 하게 된다. 허나, 새로운 떠남과 새로운 정착의 반복이 우리 인간들의 나그네 인생의 기본적인 공통 구조라고 본다면 어떨까? 정착할 때도 그 정착이 영원한 안정감을 선사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인지하며, 떠날 때도 그 떠남이 영원한 불안정함을 가져다 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런 자세를 체념이라고 받아들이고 마치 인생무상을 사는 무책임함으로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체념이 아닌, 사실상 초월을 말하고 있다. 우리의 정체성과 본질은 나그네 삶의 패러다임에서의 일시적인 정착과 떠남에서 결코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내가 이런 자세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기독교의 종말론적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미래에 대한 소망이 현재 내 삶을 이루는 가장 큰 축이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현재 나의 죄에 대한 죽음과 의에 대한 살아남이 되고, 미래 소망적인 구원의 참된 의미를 잊지 않고 하나님백성으로서 하나님백성답게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울이 말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이 될테고, 신앙과 삶이 일치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 될테며,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과는 다른 그리스도인의 삶이 될테다. 그렇다. 이미 왔으나 아직 오지 않은 하나님나라를 살아가는 우리 하나님백성들의 삶은 초월적이나 초월적으로 보이지 않으며, 현재에 모든 것을 걸지 않지만 현재에 누구보다도 충실하며, 끊임없이 미래소망적인 모습일 것이다. 아, 칭의가 과거나 현재완료형이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두렵고 떨림은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의 삶의 본질일 것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이 거룩함의 이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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