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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의리

가난한선비/과학자 2017. 12. 14. 06:09

'의리'가 편을 갈라 분열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난 사양하겠다. 차라리 의리 없는 사람이 되겠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러나 뼈 있는 말이다. 자기중심적이지 않은 사람 없고, 편향적이지 않은 사람 없다. 그러나 인간의 불의함을 대하는 태도조차 자기와 사상이나 믿음이 같은지 다른지에 따라 이분법적으로 구분이 된다면, 그리고 그것을 의리라고 칭한다면, 난 의리 없는 편을 택하겠다. 의리 좋은 것이 결코 분별력 없음을 덮어 주고 포장해 주는 사랑과 관용, 긍휼이 될 수는 없다. 이간질을 도모하고 부추기는 무기일 뿐이다.


의리라는 말은 기독교의 믿음을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에서라면 특히나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에서의 믿음은 의리가 아니다. 오히려 의리의 의미를 넘어선다.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도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였던 1세기 바울 시대의 이스라엘을 답습한 것이다. 거룩함이 구별됨이라고 할 때는 인간 스스로가 그 구별의 망치를 들고 능동적으로 편을 갈랐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이 구별되는 행위를 했기 때문이 아니란 말이다. 기본적으로는 수동적인 의미가 강하다.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구별'되어지는' 것이다. 우리 안에 내주, 인도,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안에 아직도 살아있는 자유의지를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여 행동으로 나타내는 건 결국 우리 몫이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생각과 마음이 같다고 해서 그것만을 신뢰한 채 자신이 속한 공동체 리더의 어떤 말이라도 무분별하게 받아 들이거나 침묵으로 동조를 한다면, 이는 곧 성령의 인도를 무시한 채 성령 대신 리더에게 순종한 꼴이 될 수 있다. 성령의 인도를 잘 받는 리더라고 해서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마치 성령과 일체이셨던 예수와 같을 순 없다. 그 리더도 실수하는 인간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또한 리더가 의리라는 명목으로 공동체의 의견을 통일시키려고 한다면, 그것은 곧 폭력이라는 신화의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하나됨'도 성령의 역사여야만 한다. 인간의 노력의 산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의리는 분별력을 겸비한 것이어야 한다. 분별력이 제거된 의리는 책이나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의리,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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