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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
나는 주로 마우스로 실험을 하는 생물학자다. 어떤 질병을 마우스에 유도하여 아직 알려지지 않은 그 질병의 원인이나 진행과정 등을 밝혀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궁극적으론 인간의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유력한 단서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인간에게는 윤리적인 문제로 이런 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 대신 희생당할 동물 모델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선 유전자가 비슷해야 한다. 가장 인간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침팬지는 너무 비싼데다 새끼 수도 많지 않고 새끼를 낳는 주기가 길기 때문에 적당하지 않다. 한편, 마우스는 가격도 저렴하거니와 한 번에 많으면 열 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고 임신 기간도 3주밖에 되지 않을 뿐더러, 태어난 지 두 달 정도면 충분히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어른이 된다. 또한 2년 정도의 수명을 지니기 때문에 축소된 시간 틀 안에서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진다. 나아가 몇 년전에 노벨상을 받았던 유전자 결손 마우스를 만드는 기술이 가장 잘 정립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유전자를 매개한 질병을 연구하기에는 마우스만한 모델이 없는 것이다. 지금은 유전자 가위가 몇 년 전에 발견되고 엄청난 파장을 일으켜 전통적인 방법으로 유전자 결손 마우스를 제작하지 않지만, 난 그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질병에 걸린 마우스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유쾌하진 않다. 하지만 인간을 대신하여 희생당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그건 치밀하게 계획된 일이다. 알고보면 마우스는 참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그저께 내가 일 년이 넘도록 지속해서 관찰해 온 수많은 마우스들 중 하나가 너무 고통스러워 보이고 곧 죽을 것 같으니 한 시간 이내로 안락사를 시키라는 연락이 동물실 수의사로부터 왔다. 메일을 보낸 시간은 오후 2시 반이었다. 주어진 시간 내에 실행하지 않으면 자기가 직접 할 것이며, 그러면 우리가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말까지 적혀 있던 짧막한 경고성 이메일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때 그 연락을 받은 사람이 실험실에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실험으로 바빠 책상에 앉아있던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전화도 했다고 하는데, 당연히 아무도 그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 마우스는 안락사를 당했다.
안락사를 시키고 완료되었으니 혹시라도 필요한 장기가 있으면 냉장고에 넣어놨으니 사용하라는 이메일이 나중에 왔다. 내가 실험을 다 마친 오후 5시 무렵, 난 그동안 진행된 모든 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날따라 일이 많아 점심도 굶으며 5시까지 마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본의 아니게 뒤늦게 이메일을 확인해보니 그 죽임당한 마우스는 아주 중요한 마우스였던 것이다. 난 살아있는 골수 세포와 혈구세포와 혈청이 필요했다. 그런데 죽어버린 다음에는 모두 얻을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젠장!
가능한 공손하게 답장을 보냈다. 그런 일이 있을 땐 실험실 누구에게라도 연락이 되었는지 확인하고 안락사를 시켜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한 시간 전의 통보는 너무 짧기 때문에 다음부턴 적어도 하루 전에 미리 알려서 실험 계획을 재조정할 수 있게 해달라는 당부를 담은 내용이었다. 아무리 마우스가 고통스러웠다 해도 그 마우스가 고통스럽기까지 일 년을 넘게 기다려온 당사자인 나는 더욱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동물 보호한다고 아예 동물 실험을 금지하자는 극성 단체도 있지만, 각 연구소마다 존재하는 이런 마우스 관련 기관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난 이럴 때마다 참 헷갈린다. 그들의 존재가 마우스를 위한 건지, 사람을 위한 건지... 그들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면, 마우스를 아프게는 할 수 있으나 적당히 아프게 해야한다는 것인데, 그 적당하다는 선이 애매하다는 단점이 있다. 난 아주 중요한 마우스를 하나 놓쳤다. 빌어먹을 그 마우스 윤리라는 명분 때문에 말이다.
물론 그들의 밥벌이를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이해는 간다. 동물 학대하는 행위는 나도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처리하는 부분에서 그들은 조금 더 융통성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낸 이메일 덕분에 이 일이 커져버렸고, 나의 보스와 동물실 관리 디렉터까지 개입하여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서로 다짐했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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