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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일상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1. 16. 08:09


일상.


즐기고자 하는 안간힘이 즐기는 행위보다 커질 때가 있다. 때론 전자가 후자로 착각되기도 한다. 안간힘은 단순한 기대가 아니다. 적극적 의지와 행동력까지 추가된 것이다. 그래서 힘이 있다. 어떤 형식으로든 결과를 만들어낸다. 


즐길 줄은 모르나 즐기려고만 잔뜩 굶주린 자의 열매는 설익은 법이다. 한 입 베어물면 향긋한 과즙이 입과 턱과 뺨을 흠뻑 적시며 흘러내리는 진짜 열매가 아닌, 설탕이 겉에 발라진 가짜 열매다. 아무리 달아도 그건 거짓의 열매인 것이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인 접근과 해석이지만, 타인의 입장으로서 무어라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런 열매 따먹기를 즐겨하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철두철미한 계획대로 움직이는 세상 속엔 효율은 높을지언정 경이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엔 기적도 없으며 축복도 없다. 유일한 행복은 계획 성취에 제한되고, 가능성이란 포문은 닫혀버리며, 성취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그 안에서 차곡차곡 쌓여간다.


계획하고 원하는대로 얻어내고 만족해야만 하는, 그물망처럼 조밀하게 짜여진 삶에서, 즐긴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모든 것이 좌표로 찍히는 그래프 속에 갇힌 삶에 과연 여유라는 게 있을까. 그저 조금 속도를 늦춘다는 것을 진정한 여유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삶에 무슨 여유가 있겠는가. 바둑판 안에 갇힌 삶에 무슨 가능성이 존재하겠는가. 그건 감옥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나’로 가득한 열정적인 사람들을 본다. 단박에 느껴지는 것은 패기와 젊음이다. 뭔가 한 건 해낼 것 같다. 허나, 젊다는 건 가능성을 뜻할 수도 있지만, 성숙하지 못하다는 뜻도 내포한다는 사실을 조금 머리가 커지면서 깨닫게 된다. 즐길 줄 안다는 건 젊었을 때의 패기만으로 따먹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닌 것이다. 


즐길 줄 안다는 것은 빈 공간이 많다는 말과도 같다. 그럴 때만이 즐길 수 있다. 그 빈 공간은 계획을 세우되 일이 막상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도 그리 낙심하지 않는 초탈함을 부여하기도 한다. 타인의 개입과 충고에 언제나 열려있도록 도와준다. 모든 점에 좌표를 찍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에게는 타인의 개입과 충고가 그저 방해 정도의 의미일 테지만, 즐길 줄 아는 자에게는 기회다. 함께 한다는 것은, 그리고 상호협력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나의 바둑판 안으로 끌고 들어와 가둬버리는 게 아니다. 나의 바둑판을 벗어던지고 더 큰 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불확실한 삶에는 두려움도 존재하지만 가능성과 여유도 존재한다. ‘나’로만 채워지는 공간이 아니다. 타인과 함께 하는 삶을 방해가 아닌 도움으로 만들어가는 삶. 다름 아닌 우리의 일상이다.


**사진은 헌팅턴 라이브러리에서 쌔벼옴.

Sailing Ships off the New England Coast by Fitz Henry Lane, ca. 1855.

The Huntington Library, Art Collections, and Botanical Gard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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