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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하루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2. 14. 01:23

하루.


머리가 아파 밖으로 나갔다. 갑자기 실내에 산소가 부족한 것 같은 그 불쾌한 기분을 떨쳐버리고도 싶었다. 짧은 주기를 가지고 규칙적으로 왼쪽 눈 위를 정확히 겨냥한 통증을 이미 한 시간 정도 참아왔던 때였다. 미련을 가지지 않고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때 스스로에게 느꼈던 그 대견스러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스프 한 컵과 풀 부스러기 한 접시를 점심으로 먹고, 바닐라 넛 향의 커피를 한 잔 마셨다. 괜찮은가 싶었다. 이번 주 토요일 독서모임에서 함께 나눌 ‘역사의 역사’를, 유시민의 순탄하고 논리정연하며 군더더기 없는 글쓰기에 감탄하며 삼분의 일을 무리없이 넘겼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묻는다. 과학하는 것보다 이런 인문학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더 마음이 편하고 설레는 과학자라니!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오늘은 조금 무겁게 느껴진다.


자리로 돌아와 다시 논문을 써내려가려는데 이 놈의 두통은 더 큰 진폭을 가지고 같은 주기로 다시 왼쪽 눈 위를 강타하기 시작했다. 젠장. 시계를 보니 3시 남짓. 조금 더 버티다가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어 일찍 퇴근하기로 맘 먹었다. 집에 오자마자 아들을 픽업하기 전까지 한 시간만 눈 좀 붙이자며 두통약을 먹었다.


알람이 울려 잠이 깨니 다행히 어느 정도 통증이 사라졌다. 아들을 픽업하니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한다. 프라이드 치킨이 아닌 배이크드 치킨. 파빌리온에 가서 여덟 조각을 샀다. 방금 전에 구운 것 같이 따뜻하고 맛있었다. 아들이 이제 나보다 많이 먹는다.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아들은 숙제하러 들어가고 난 이렇게 멍하니 앉아있다. 뭐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하루가 이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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