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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nologue

깊이

가난한선비/과학자 2019. 3. 2. 08:46

깊이.


깊이는 무겁지 않다.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깊이와 무게는 다르다는 말이다. 어쩌면 깊이는 무게를 측정할 수 없는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


깊이는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수동적인 시간의 흐름이 깊이를 만들어주진 않는다. 그러나 능동적인 사유와 내뱉음 사이의 간격이 길어질수록 완숙미는 더해질 수 있다.


존경하는 정경 집사님의 소개로 철학자 고병권의 강의를 하나 들었다. 어제 포스팅한 글쓰기에 대한 개인적 생각을 정경 집사님께 먼저 털어놓았을 때 도움이 될 테니 한 번 보라고 권하셨던 강의였다. 한 편의 좋은 설교와도 같은 강의라고 첨언하시기도 했었다. 이 몸글의 첫 두 단락에 쓴 요지는 내가 아닌 고병권의 깨달음이다.


그는 깊이를 생각하는 우리들의 일반적인 개념 자체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깊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철학은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했다. 묵히고 숙성시키는 과정, 완성도가 아닌 완숙도를 높이는 과정, 효율적인 방법 문제라기보단 기다림의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깊이는 기다림의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기다림은 에너지를 발산하거나 없이하는 시간이 아니다. 에너지를 응축하는 과정이다. 한 마디로 내공이 쌓이는 시간인 것이다.


맞다 싶었다. 난 깊이를 추구한다 해놓고 어쩌면 쓸데없이 무게만 잡으려고 하진 않았을까. 과연 깊이란 무엇일까. 남들이 잘 모르는 지식을 먼저 섭렵해서 잘난 척하듯 먼저 떠벌리는 것일까. 그러면 깊이는 계몽인가. 아니면, 남들이 읽기 어려워 하는 책 (이를테면 원어로 된 1차 자료)을 마침내 읽어내고 그것을 겸손의 옷을 적당히 두른 후 자신의 깨달음을 설파하는 것일까. 그러면 깊이는 과연 명석함인가. 아니면, 보통 사람은 엄두도 못낼 다량의 지식을 전달하고 풀어주는 역할을 해내는 것일까. 그러면 깊이는 지식소매상인가.


그러나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울림을 주지 못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타인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박학다식은 무슨 소용일까. 그것이 인간에게 도움을 줄까. 스스로 만들어놓은 피라미드 위를 오르는 사람들에게만 양식이 되진 않을까. 오히려 인간을 메마르게 하는 건 아닐까. 사실 우리 인간에게 모자란 게 박학다식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 박학다식은 무거울 뿐 깊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무거운 추를 안고 있는 자는 가라앉을 뿐이다.


가라앉고 싶진 않다. 난 상승하고 싶다. 피라미드가 해체된 곳에서. 나를 성찰하되 남을 배제하지 않는 곳에서. 온전히 나눌 수 있는 곳에서. 깊이란 이런 곳으로 향하는 길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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